언제부턴가 사서 읽는 책의 대부분이 육아 관련 서적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알랭드보통의 사랑씨리즈를 좋아하던 평범한 계집아이들 중 하나였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인 흔하디 흔한 아줌마 중 하나가 된거다.
문득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있는 육아서적들을 보다,
내 사춘기 시절 엄마가 '당신의 자녀가 흔들리고 있다' 라는 책을 읽고 계신 걸 보고
"엄마 딸이 이렇게 잘만 크고있는데 왜 이런 책을 보고있어? 누가 보면 엄마 딸이 비행청소년인 줄 알겠어!" 라고
쿠사리를 줬던 기억이 났다.
엄마는 그런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한참 웃으시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글쎄, 우리 개똥이가 이러는 거 있지?" 하며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일러바치곤 또 웃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난하게 큰 아이 중 하나인데,
공부를 썩 잘하진 않았지만, 학교에서 포기할 정도로 못한 건 아니었고,
학생 때 금지되어있었던 건(술, 담배, 가출 등등)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딱히 학원이다 과외다 하는 것 없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갔고,
또 적당히 대학을 다니다가,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남들 다 시집 장가 갈 나이가 되자 또 시집을 가고 애 낳고 살고있다.
내 스스로 내 삶이 무난하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에게 종종 큰소리를 쳤었다.
"엄마처럼 자식 거저키운 사람이 흔하겠어? 내가 언제 엄마 속 한번 썩인 적도 없잖아."
그럴때마다 엄마는
"저년이 기껏 키워놓으니 지 혼자 큰 줄 알지" 라고 말을 하면서도 또 "그래, 니 말이 맞다" 며 웃기만 했다.
하지만 막상 아줌마가 되고 애를 낳아 키워보니,
아무리 말을 잘 들었다 한들.. 어릴적의 난 엄마가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똥오줌을 못가려 온몸에 똥칠을 했을,
배고파 빽빽 울어도 엄마가 젖을 물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굶어죽었을,
너무나 나약한, 엄마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던 그런 수 많은 아기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더라.
엄마도 나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우는 아이를 달래고 젖을 물렸겠지.
엄마도 나때문에 더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채로 손에 내가 싼 똥을 묻혀가며 기저귀를 갈았겠지.
아이를 낳고나니, 그간 엄마에게 했던 그 모자란 말과 행동들이 그렇게 후회될수가 없다.
나는 21세기에 아이를 낳은 덕에
정보의 홍수속에, 필요한 지식은 언제든지 습득이 가능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육아서적을 읽을 수 있었고,
내 아이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인터넷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다.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울적에는
엄마보다도 더 많은 연세의 할머니의 조언만이 유일한 육아 지식 습득로였을텐데..
빼곡히 쌓인 육아서적을 보면서도
그때의 엄마만큼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자꾸 자신이 없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그 어른같기만 하던 엄마는 이제 친구와 같아졌다.
엄마는 나에게 늘어난 뱃살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가끔은 아빠의 무심함을 투정부린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부모님께 항상 잘 사는 모습만 보여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다른 많은 부부들이 그렇듯 신혼 때 많은 부부싸움을 했지만, 한번도 엄마에게 티를 낸 적이 없다.
정말 심하게 싸워서 몹시 속이 상할땐
가출을 한답시고 나와, 택시 타고 시댁에 가서 시어머니를 붙들고 울다 잤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또 많이 어려서,
친정엄마 걱정시켜드릴 건 마음 아팠지만, 시어머니가 걱정하실 것 까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시어머니도 정말 좋은 분이셔서, 그런 나를 한번도 혼내지 않으시고
"남잔 다 그래.. 니가 이해해줘야지 어쩌겠니.."라고 매번 토닥여주시기만 했다.
뭐 지금이야 그때처럼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고, 한다해도 누굴 붙들고 우는 짓 따위 하지 않지만..
아직도 그 때 시어머니가 걱정하셨을 걸 생각하면 많이 죄송스럽다.
여튼 그런 마음에, 친정 엄마에게는 힘든 내색을 도통 하지 않는 나인데..
그런 나에게 아빠랑 또 부부싸움을 했다며 아빠 흉을 보는 엄마를 보면 어떨 땐 친구이다 못해 여동생같기까지 하다.
"엄마 아빤 나 결혼 시키드니 도로 신혼이야? 왜 우리도 안하는 부부싸움을 그렇게 해?" 하고 또 엄마에게 쿠사리를 준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또 "그러게나 말이다~" 라며 그냥 헤헤 웃으신다.
그 모습을 보면
먼 미래에 내 딸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내 딸에게 우리 엄마처럼 친구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어진다.
가끔 내가 속을 썩이거나, 엄마와 크게 싸울때마다 엄마가 한 말이 있다.
"니가 딱 너같은 딸을 낳고 속썩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근데 막상, 딱 나같은 딸을 낳고나니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딱 엄마같은 엄마만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육아서적들을 보니 자꾸 엄마 생각이 나서..
'지금 당신의 자녀가 흔들리고 있다' 라는 책을 보던 엄마의 심정이 이제야 공감이 되는 게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나는 엄마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글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네요... ㅠㅠ
친구같은 울엄마. 아빠랑 말다툼하면 나한테 와서 그대로 이르는 울엄마. 그리고선 헤헤 바로 풀어지는 울엄마.
지금 바로 옆방에 계시는데 또 보고싶네.
가서 꼭 안아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