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잡네... 어쩌네... 아무리 말이 많아도, 세월 흐르면 유부남들에게 제일 무서워지는
존재가 바로 마눌님 입니다.
연애 시절 줄담배 피우고 만나서도 넙죽넙죽 뽀뽀 잘 받아 줄 때는, 그게 영원한 줄 알았지요.
지금, 쌩으로 담배 끊은지 일년 하고도 석달 이레째가 되고 나니깐 어머니도 못 끊게 하셨던
10년짜리 담배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만든 마눌님의 두려움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워집니다.
그런 마눌님께서 올해 목표를 남편의 다이어트에 맞추셨을 때, 전 내심 얼마간 그러고 말겠거니
했었습니다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점심 사 먹는걸 딱 끊고, 도시락을 싸 주기 시작합니다.
5분도, 7분도 이 따위의 무늬만 현미가 아닌 쌩현미와 1:1된 밥은 지을 때 영락 고구마 찌는 냄새가
납니다. 씹을 때 절반 쯤 여물을 씹는 느낌으로 힘을 주어야 하며 다음날 화장실에서 열심히 퍼덕
거리고 나면 심심찮게 전혀 소화되지 않은 벼이삭;;;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변비 따윈 없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면 위안이겠지요.
사실 몸무게 0.1톤의 세상으로 뛰어들면서 남편 체중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아내를 보는 사람들은
제가 다 심하게 나쁜 놈;;;인 줄 압니다. (넌 맨날 밑에서만 해야겠다고 놀리는 새끼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 좌식들은 여인네들의 힘을 우습게 아는 븅딱 들입니다. -_-;;;)
그러다 받은 건강 검진에서, 고혈압에 지방간이 나오니깐 마눌님이 딱 작정을 하시더군요.
참 웃긴게, 술담배 입에도 안 대면서 저런 질환이 나오니 치료 방법이 딱히 없더라구요.
의사 선생 왈 '20키로만 빼고 와서 봅시다. 그때도 계속 이러면 뭐 평생 약 먹고 살아야지요...'
그 뒤로 정말 배 부르게, 포만감이라는 걸 한번도 느껴보질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체육관 부터 튀어 가야 합니다. 운동 안 갔다 오면 그날 와우를 접어야 하기에 얄짤
없습니다;;; (어제 52 찍은 사젭니다 -_-;;;)
얼마전 폭소클럽에서 살점 좀 있는 개그맨이 가상의 미래에 대해 이야길 하면서 그러더군요.
자기들이 납득할 수 없는 과거의 단어들에 대한 연구랍시고... 단식원... 굶기느니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반마리 치킨... 그 시대엔 기형 닭이 많았던 것 일까요... -_-;;; 등등을
이야기 하는데, 진짜 가슴에 사무치더군요.
열두시 땡 치고, 다른 사람들 모두 기름지고, 푸짐하며, 향신료로 입맛을 돋군 각종 식사를
즐기러 갈 때 쓸쓸히 도시락을 엽니다. 벼이삭 익혀 놓은 듯한 밥과... 당장 뱀이라도 기어
나올듯한 풀밭에서 홀로 수저를 들기 시작하지만, 그게 양이라도 많으면 덜 서러울텐데
위장의 공허함은 채울 길이 없습니다.
점심시간 끝나고 한 서너시 넘어가는 이 때쯤 되면...
허기짐에 손까지 떨려 옵니다...
무슨... 이 나이 먹고... 결식 아동도 아니고... 생수대에 물 받으러, 그나마 제일 큰 머그컵을 골라
들고 가는 제 모습이 왜 이렇게 처량할까요... ㅠ_ㅠ
너무 배고파서... 핸드폰을 열고 문자 한통 찍습니다.
'여보... 배고파...' -_-;;;;;
신속하게도 답장이 옵니다.
'조금만 참고, 저녁에 봐요.
봄나물 나왔길래 냉이 사다
놨어요. 이따 맛있게 해
줄께요. 매점 가면 알죠?'
구내 매점에서 2천원짜리 샌드위치와 펩시 한캔 콤보로 질러 봤음... 아주 꽁으로
야근이라도 때려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도대체... 냉이;;; 라는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되냐구요...
ps.
티뷔에서 채식만이 살 길이다... 따위의 프로그램이 나오면 전 그 채널을
마눌님 몰래 지워 버립니다;;;
진짜, 축산농가에서도 로비를 해서 고기 안 먹으면 죽는다;;; 따위의 방송을
집중적으로 편성 하던가 해야지.
이러다가 와이프가 베지테리안이라도 선언하는 날에는 정말 전 기아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