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군요.

 

 

시골의 장마철은 참으로 지리하기만 했습니다.

밖에서 마냥 뛰어놀고픈 초딩들에게 장마란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는 일이였죠.

 

 

그러다 빗발이 많이 약해지면

어른들은 우의를 입고 물꼬를 보러 나가시고

아이들은 흙탕물이 흐르는 봇도랑에 나가

반두를 대고 물고기를 잡기도 했지요.

 

 

아, 사실 전 오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예전에 할머니께서 집에 오리를 키우셨거든요.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모든 동물들을 싫어하던 저로서는

 

오리들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도 귀에 거슬렸고

여기저기 개념없이 싸대는 똥도 고역이었던데다

비릿한 내음의 오리알후라이 마저도 싫어했지요.

 

 

결정적으로 오리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어요.

예전에 크게 비가 왔을 때였던가요

강이 불어나 몇몇 논은 물에 그대로 잠기기도 하고

집 앞마당까지도 물이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마을 주민들이 불어난 강물을 막느라 부산하던 그 때,

우리집의 오리들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물에 잠긴 집앞의 논 위에 둥둥 떠다니며 놀다가;

어느덧 하류로 천천히 사라져 가더군요.

 

그 이후로 저희 집에서는 다시는 오리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장마철, 집안에서 비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면

짙은 초록색의 대지와 회색의 하늘

이 두가지 색깔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사이를 빗방울들이 끊임없이 그어대는

언제나 한결같은 날들이 계속됩니다.

 

이상이 권태에서 묘사하던 마냥

따분하기 짝이 없는 농촌 풍경이지요.

 

그 한결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마루에 뒹굴면서 책을 읽고 있던 때였던가요,

 

 

갑자기 검은 물체가 푸드덕 하며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저는 놀라움반 호기심반으로 일어나 그 검은 물체가 있던

2층 계단으로 살며시 올라가 보았습니다.

 

 

 

새매였습니다.

아마도 비를 피해 날아가던 길이었나봐요.

녀석은 막다른 이 곳을 벗어나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고 있더군요.

 

새매는 매보다 크기가 조금 작은 맹금류입니다.

등과 날개의 검정색 깃털과 날카로운 부리,

그리고 흰 바탕에 검은 줄이 있는 호피무늬의 가슴털이 멋진 새죠.

 

제아무리 철없는 꼬마라도 그 모습엔 주춤할 수 밖에요.

게다가 얼마나 격하게 날개짓을 해대며 날아오르는지

당시엔 정말 무서웠다구요;;

 

 

그렇게 한동안을 새매를 지켜보다가

녀석이 잠시 앉아있는 틈을 타

재빠르지만 조심스럽게 녀석의 날개를 감싸안았습니다.

 

"할머니, 나 매 잡았어!!" 하고 뛰어내려가던 순간은

전 그야말로 독수리라도 잡은 듯 의기양양해 했던 것 같아요.

 

 

 

체구는 크지 않았지만 녀석의 자태는 무척 멋있었어요.

동네 뒷산에 뛰어다니던 꿩 따위와는 차원이 틀렸죠.

온갖 갑주를 갖추고 말에 오른 위풍당당한 기사의 모습같았다고 할까요.

 

 

그 모습에 감탄하던 사이 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녀석은 날개죽지쪽에 상처가 있더군요.

날개 한쪽을 들춰보자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었고

그곳에는 자그마한 구더기들이 피를 빨아먹으며 커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장마철에 제대로 날지 못하고

이렇게 집으로 들어오게 된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순간

제가 방심했던 모양인지 새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제 손등에 박혔습니다.

 

순간 비명을 지를 정도로 발톱은 날카롭고 또 아프더군요.

그렇게 박혀버린 네개의 발톱을 겨우 뽑아내고서

할머니와 저는 소독용 알콜과 솜을 가지고

녀석의 날개죽지를 닦아내고 약을 발라주었습니다.

 

그렇게 징그러운 벌레들을 모두 털어내고 약을 발라줄때까지

그녀석은 짧고 날카롭게 울곤 했습니다.

 

신기했던건, 일반적인 새들이 사람 손에 잡혀있으면 발버둥치기 마련인데

이 놈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거죠.

부리부리한 눈망울로 말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저는 새매의 발목한쪽에 끈을 묶은 다음 

닭장안에 있던 닭들을 내쫓고; 그 안에 녀석을 넣어두고서는

그날 저녁, 가족들에게 새매를 잡은 무용담을 연신 떠들어댔던 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 그녀석을 바라보니 밤새 난리를 피운 듯 엉망이더군요.

답답한 닭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그에겐 너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목장갑;을 끼고 녀석을 간신히 밖으로 끄집어 냈지요.

사실 그때도 정말 무서웠습니다;

 

방으로 녀석을 데려와 다시 한번 약을 발라주고서는

그놈을 닭장 주변의 나무에다 묶어 놓았습니다.

 

녀석은 날개를 펼치고 쏜살처럼 날아가려다

계속 끈에 걸려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더니

결국엔 닭장 위로 단번에 올라앉더군요.

그렇게 녀석은 고개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위처럼 서 있었습니다.

 

 

저는 반두를 들고 도랑으로 나가 녀석에게 끼니로 줄

미꾸라지며 버들막지같은 여러 물고기들을 잡아왔어요.

그렇게 돌아왔더니.. 닭들이 무척 불안한 소리로 울고 있더군요.

 

 

그놈들은 집에는 들어가고 싶은데 그 위에서 노려보고 있는 새매 때문에

닭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면서 구구구.. 하고 불안한 울음소릴 내고 있었죠.

간혹 새매는 가까이 접근한 닭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고

그때마다 닭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곤 했습니다.

 

사실 레그혼 종류는 성장이 빠르고 몸집도 커서 성체는 새매보다 훨씬 큽니다.

그러나 우리집의 닭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 헤매고 있었죠. 

아마도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였겠죠.

 

 

결국 며칠 뒤엔 겁대가리 없는 중병아리 한놈이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새매에게 당해 맛있는 식사가 되어버렸습니다;

 

감정이 참 묘하더군요.

야성의 본능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인가봐요.

 

할머니께선 닭 다 잡아먹기 전에; 어서 풀어주라고 꾸지람 하셨고

며칠간 약을 발라주었던 녀석의 상처도 많이 깨끗해진 것 같아

저는 아쉽지만 풀어주기로 했어요.

 

 

비록 며칠동안이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저를 보면

날아들어 쪼아대려 하거나 발톱을 세워 할퀴려 했습니다.

보내주려 끈을 풀던 순간까지도 말이죠.

 

그렇게 상처를 치료해준 나를 하나도 반기지 않는 녀석에게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녀석은 녀석대로의 삶이 있는데.

 

녀석의 검은 눈빛은 집에 날아들던 처음보다 훨씬 좋아 보이더군요.

 

그녀석을 안고 닭장을 떠나니

닭들은 그제서야; 제세상을 만난듯 신나게 울면서 닭장으로 들어갔고

저는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약을 발라준 후

마당으로 나가 녀석을 들었습니다.

 

 

 

보내주려니 못내 아쉬웠지만

흥부가 제비 보내주듯이; 그냥 보내주는게 맞는 것 같았어요.

잘가라고 맘속으로 되뇌이고 두손을 들어 그 놈을 던져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늘로 던져올려진 새매는 단 한번 날개짓을 하더니

날개를 펼친채 바람을 타고 흐린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군요.

그리고 잠깐 사이에 녀석은 저의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에요..

 

곁에서 보시던 할머니께선 제게 잘했다 나중에 복받을거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괜히 섭섭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돌아보면 제가 동물에게 그렇게 일방적인 애정을 쏟았던건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이상은의 '새'라는 곡을 듣게 되었을때

저는 흐릿해져가던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흐린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던 한마리 새에 대한 기억을 말이죠.

 

세상엔 분명 인간에게 속해선 안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엔가 길들여져버린 삶의 한계에 대해서

그때 전 어렴풋이나마 생각해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생각만 그랬을 뿐,

전 그리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거나

혹은 자유로우려는 노력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깎고 마름질 해서 어떤 틀 속에 집어넣기에 바쁘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삶에 대한 동경은

지금의 삶에 힘을 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비록 새처럼 자유로울 순 없지만

꿈을 꾸는건 아직까진 자유로우니 

그래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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