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내 기억속의 외할머니는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내가 서너살 무렵 어머니는 당시 피치못할 사정으로 나를 할머니댁에 일주일간 맡겼던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 후에 어머니께서 발견한 건 아들이 아닌
'살아남아야 한다' 는 강한 눈-_-빛을 가진 꼬마 로빈슨크루소 였다고 한다.
당시 계란후라이가 올라가있지 않으면 밥을 처묵지 않던 지독한 편식쟁이였던 나는
'삼일만 굶기면 하수구의 쓰레기도 줏어먹게 되어있다'는 할머니의 강한 훈육방침에 완전한 정신 개조.
집에 와서 아무거나에 밥을 줘도 눈치를 보면서 허겁지겁 먹는 날 보며 어머니께서는 다시는 할머니댁에 날 맡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나.
어느정도 대가리가 커서 만나뵈어도 당시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나에게
'저거 살 안빼면 병신'이라며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하셨고 남들이 하지 못하던 모진 말씀도 바로바로 질러대시는 통에
도무지 외손주와 할머니와의 '살가운 정'이라는 문구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대가리가 크고 나서야 알게 된거지만
철없던 시절 가끔씩 어머니와 식칼을 빼들고와 피튀기게 싸움을 할 때마다
도대체 어머니의 이 대책없는 고집불통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따져보다가
그것이 외할머니라는 것을 알게된 후 소리없이 혼자 좌절한 기억도 있다.
그러던 할머니가 쓰러졌단다.
고혈압이 있으셨는데
그게 잘못되어서 인지 집에 혼수 상태로 있던 걸 둘째외삼촌이 발견했단다.
평소 강인한 성격(?) 탓에 자식이 칠남매나 되어도 같이 사는걸 거부하시고 혼자 지내시다 그렇게 되었으니
이어서 형제들끼리 책임공방으로 대판 싸움도 났고
그렇게 15년만에 대구로 할머니를 뵈러 갔다.
사실 진즉에 갔어야 했지만
가게 핑계, 일 핑계로 늦게간 감도 없잖아 있지.
실제가서 뵈었을때도 너무 초췌하게 변해 버린 모습에 뭉클하다긴 보다
그 꼬장꼬장한 기백이 아직도 여전하신 모습에 흠칫; 한 난 못된 놈인건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신지는 꽤 되었고 지금 기력을 회복중이신데
문제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것.
의사말로는 치매는 아니라는데 뇌로 간 혈액 일부가 차단되어서 뇌의 특정 부분이 죽어있는 상태라네.
재미있다고 해야하나
그 기억들 중 할머니께서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 기억들만 남아있다는거지.
바람이나 칠남매와 할머니를 버리고 간 할아버지는 여전히 살아계시고 할머니만을 아끼고 있는 상태이고
부산으로 피난가서 홀로 어린 칠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거지같이 살며 닥치는대로 일했던 그 시절도
큰 딸의 남편 (울 아버지)이 10년 전 죽었던 애통했던 순간도
당신의 기억 속에서 불행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다 지워버리신거 같았다.
14명이 넘는 손주들의 이름과 모습도 몽땅 다 잊어버리셨지만
난 '누고? ' '그 뚱보-_- 아이가?' 라고 기억을 해주시는 걸 보면 난 운이 좋다고 해야하는건지.
헤어질 시간이 됐다.
마침 병원에 오신 둘째 외삼촌께서 그러셨다.
절대 다음에 또 올께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가지말라고 눈물을 그치지 않으신다고
그냥 '우리 밥 먹고 올께요.' 그러란다.
'그럼 밥 아직 안먹었나? 밥은 꼭 먹어야 한다' 고 그러면서 보내주신다고.
그러면 자식들이 밥먹고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신다네.
보름이든 한달이든
그러다 다른 형제가 오면 누구 밥먹으러 갔으니 같이가서 먹으러 가라시고.
사실 난 피곤한 상태였다.
전날 일하느라 밤을 홀딱새고 KTX 일요일 아침 7시 차 타고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오는 일정이라
언능 집에가서 드러눕고만 싶었다.
그렇게 다시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세살배기 아들넘이 쪼르르 와서 한마디 한다.
' 아빠, 밥.'
근데 왜 울컥하는거니
그 넘의 밥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