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글들


-_-
2011.05.18 20: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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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내 기억속의 외할머니는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내가 서너살 무렵 어머니는 당시 피치못할 사정으로 나를 할머니댁에 일주일간 맡겼던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 후에 어머니께서 발견한 건 아들이 아닌

 '살아남아야 한다' 는 강한 눈-_-빛을 가진 꼬마 로빈슨크루소 였다고 한다.

 당시 계란후라이가 올라가있지 않으면 밥을 처묵지 않던 지독한 편식쟁이였던 나는

 '삼일만 굶기면 하수구의 쓰레기도 줏어먹게 되어있다'는 할머니의 강한 훈육방침에 완전한 정신 개조.

집에 와서 아무거나에 밥을 줘도 눈치를 보면서 허겁지겁 먹는 날 보며 어머니께서는 다시는 할머니댁에 날 맡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나.

 

 어느정도 대가리가 커서 만나뵈어도 당시 몸무게가 많이 나갔던 나에게

'저거 살 안빼면 병신'이라며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하셨고 남들이 하지 못하던 모진 말씀도 바로바로 질러대시는 통에

도무지 외손주와 할머니와의 '살가운 정'이라는 문구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대가리가 크고 나서야 알게 된거지만

철없던 시절 가끔씩 어머니와 식칼을 빼들고와  피튀기게 싸움을 할 때마다

 도대체 어머니의 이 대책없는 고집불통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따져보다가

그것이 외할머니라는 것을  알게된 후 소리없이 혼자 좌절한 기억도 있다.

 

 

그러던 할머니가 쓰러졌단다.

 

 

고혈압이 있으셨는데

그게 잘못되어서 인지 집에 혼수 상태로 있던 걸 둘째외삼촌이 발견했단다.

평소 강인한 성격(?) 탓에 자식이 칠남매나 되어도 같이 사는걸 거부하시고 혼자 지내시다 그렇게 되었으니

이어서 형제들끼리 책임공방으로 대판 싸움도 났고

 

그렇게 15년만에 대구로 할머니를 뵈러 갔다.

사실 진즉에 갔어야 했지만

가게 핑계, 일 핑계로 늦게간 감도 없잖아 있지.

 

실제가서  뵈었을때도 너무 초췌하게 변해 버린 모습에 뭉클하다긴 보다

그 꼬장꼬장한 기백이 아직도 여전하신 모습에  흠칫; 한 난 못된 놈인건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신지는  꽤 되었고 지금 기력을 회복중이신데

문제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는것.

의사말로는 치매는 아니라는데 뇌로 간 혈액 일부가 차단되어서 뇌의 특정 부분이 죽어있는 상태라네.

 

재미있다고 해야하나

그 기억들 중 할머니께서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 기억들만 남아있다는거지.

 

바람이나 칠남매와 할머니를 버리고 간 할아버지는 여전히 살아계시고 할머니만을 아끼고 있는 상태이고

부산으로 피난가서 홀로 어린 칠남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거지같이 살며 닥치는대로 일했던  그 시절도 

큰 딸의 남편 (울 아버지)이 10년 전 죽었던 애통했던 순간도

당신의 기억 속에서 불행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다 지워버리신거 같았다.

 

14명이 넘는 손주들의 이름과 모습도  몽땅 다 잊어버리셨지만

난  '누고? ' '그 뚱보-_- 아이가?'  라고 기억을 해주시는 걸 보면 난 운이 좋다고 해야하는건지.

 

헤어질 시간이 됐다.

마침 병원에 오신 둘째 외삼촌께서 그러셨다.

절대 다음에 또 올께요.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가지말라고 눈물을 그치지 않으신다고

 

그냥 '우리 밥 먹고 올께요.' 그러란다.

'그럼 밥 아직 안먹었나?  밥은 꼭 먹어야 한다' 고 그러면서 보내주신다고.

 

그러면 자식들이 밥먹고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신다네.

보름이든 한달이든

그러다 다른 형제가 오면 누구 밥먹으러 갔으니 같이가서 먹으러 가라시고.

 

사실 난 피곤한 상태였다.

전날 일하느라 밤을 홀딱새고  KTX  일요일 아침 7시 차 타고 저녁에 다시 서울로 오는 일정이라

언능 집에가서 드러눕고만 싶었다.

 

 

그렇게 다시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세살배기 아들넘이 쪼르르 와서 한마디 한다.

 

 

 

' 아빠,   밥.'

 

 

 

근데  왜  울컥하는거니

 

 

그 넘의 밥이 뭐길래.

 

 

 

 

 

 

 

 

  

 

 

 

 

 

 

   

 

 


 

 

 

 

2011.05.18 20:25:41
1.   -_-
좋은 글 올리는 건 좋은데, 누가 쓴 걸 하나씩 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인건가?
2011.05.18 20:38:24
2.   -_-
음... 그런것 같은데?
2011.05.18 20:47:38
3.   -_-
우리가 가짜 마중한테 좀 데이긴 했지... 글쓴의 피드백이 없는게 좀 불안하긴 하다 -_-
2011.05.18 21:11:01
4.   -_-글쓴
무표정 10년차에 이런 리플은 첨이군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누가 쓴걸 퍼온게 아니라 제가 2주전에 있었던 일을 습작으로 써놓았던걸 손봐서 올린건데요..

(고정닉을 달지 않고 글만 써서 그런가.)


밑에 국수, 솜사탕 글들을 보다가 제가 쓴 글이 생각나서 저도 올려본겁니다.


그리고 밑의 글들하고 전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도 찜찜하시면 건청한테 조회해보세요;
2011.05.18 21:12:20
5.   -_-3
너무 성급했네 미안;;
2011.05.18 21:14:53
6.   -_-
좋은글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그래;
나는 아래 두개랑 같은 작가인지 알았어
2011.05.18 21:15:24
7.   -_-1
나도 미안; 글 느낌이 비슷비슷해서-_-
2011.05.18 21:28:02
8.   -_-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건 돈과 개와 할머니밖에 없어.
절대로 배신하지 않거든.

나는 글쓴의 외할머니와 정반대의 외할머니가 계신데,
나를 키워주셨고, 지금은 78세이시거든.
요즘 잔병치레를 많이 하셔서 큰 손자로서 많이 걱정된다.

앞으로 10년만 더 사신다면,
그러면 정말로 정말로 좋을 것 같아.
2011.05.18 21:42:33
9.   -_-
난 새우깡만 보면 할머니생각나. 중학교시절 꼬맹이인 내가 멀 안다고 할머니만나러갈때마다 구멍가게서 할머니 좋아하는 새우깡이랑 맥콜사갔는데...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표정을 잊을수가 없네. ㅎ 근데 막상 할머니가 돌아가실때 눈물 한방울 나지 않는 내가 넘 이상했는데, 입관할때도 사실같지않아 기분이 전혀슬프지않았는데. 영화 집으로 보고 대성통곡을 했지. 그것도 남자화장실에서 소변보는도중에 말야. 근데 아직도 큰집가면 할머니가 계신것같은 느낌이야. 생생히.
2011.05.18 22:04:39
10.   아래아래아래글쓴
(추천 수: 2 / 0)
아래아래아래와 아래아래 쓴이가 다르다는 것은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아래아래아래만 제가 썼거든요.
근데 오늘 화낙 아빠 엄마 할머니 콤보네요.
2011.05.18 23:07:08
11.   -_-
화낙이 풍년이다. 다들 무슨 문학상 탈려고 준비한거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1.05.18 23:25:36
12.   -_-
가족이나 친척에게 제대로 정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나는 이런 글 볼때마다 뭉클하긴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조금 슬프다. ㅜ
2011.05.18 23:40:59
13.   -_-
우리 할머니와 정 반대... 나중에 우리 할머니 얘기도 적당히 끄적거려봐야겠다.
2011.05.19 08:32:30
14.   -_-
우리 할머니도 정 반대인데 다음달에 찾아뵈야겠다ㅠ.ㅠ
2011.05.19 09:45:39
15.   -_-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에 울컥하네...ㅜㅜ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시고 사셨던 우리어머니에게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셨기에
사실은 속으로 많이 미워하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이럴 때면 많이 보고 싶다...
2011.05.19 09:57:42
16.   -_-
무표정 문학바람났나 아파서 아침먹고 드런 워있다가 뽀뽀뽀보고 울컥 이거보고울컥
옆에서 많이 아파서 우냐고 물어봐 크흑
2011.05.19 11:19:51
17.   -_-
더 좋은 기억만 많이 기억하시면 좋겠다..

아.. 난 할머니에게.. 좋은 기억을 드렸던가..

아버지나.. 어머니가 드렸던.. 용돈을...

한복 속주머니에.. 넣어두셨다가..

꼭.. 아버지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실때 쯤에..


손주 줘야지 하면서..

손주 줘야지 하면서..

수십번.. 수백번은.. 어루만져서..

닳고.. 헤지고.. 색바랜.. 용돈을.. 손에 쥐어주시던..

할머니 였는데..


그 누구든지 간에..

준비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별은 그렇게..

피하고만 싶은... 힘들기만 한 일이다..
2011.05.19 13:19:16
18.   -_-
뽀뽀뽀랑 국수까지는 잘 참았는데 이글에서 무너지는구나.. 아.. 서른넘어 점점 값싸지는 내눈물..
2011.05.19 21:26:35
19.   -_-
다들 할머니는 좋으신가봐요. 우리집은 할머니 때문에 좋던 형제(아버지대의 형제) 관계도 안 좋아졌는데;;;
어릴 땐 가끔 보는 남들이 자랑하는 할머니라 나도 같이 살면 좋겠다고 잠깐 오셨다 가실 때면 되게 아쉬워 했는데 지금은 나쁜 생각을 더 많이 하네요. 할머니 생각만 하면 우울하고, 짜증나고, 힘들고.
이런 글들 보면 참 부러움.
2011.05.19 22:12:23
20.   -_-
아;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계속나네요 ㅠㅠ 후...
2011.12.04 10:17:30
[1]   -_-  b38dca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 다시 이글을 보게 되었는데, 저 저번주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할머니랑 20년간 같이 살다가 대학오고 취직하면서 집에 잘 안내려가게 되어 띄엄띄엄 봐서, 동생이 할머니 돌아가셨다고 전화했을 때 돌아가신 것도 실감이 안났었는데, 입관하기 전에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할머니 돌아 가시기 전에 집에 자주 못간것이 아쉽네요. 오늘 꿈에서 할머니 나왔었는데, 꿈내용은 기억안나지만 미소지으면서 깬거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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