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반말로 할게요.
요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린 편인데 장애가 있다고 하고, 엄마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여 시작된 것인데..
천만다행으로 회사에서 이해해주어서 재택근무(라 쓰고 월급도둑질이라 읽는다)를 하게 됐다.
아이의 장애는 뭐라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후천적이고, 100% 치료도 가능하고(모두가 다 100% 완치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장 긍정적인건 아이가 아주 어릴때 발견해서 치료도 쉽고 완치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라는 것.
이 내 아이의 병은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엄마 아빠가 된 -_-들이라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언젠가 꼭 여기에 이 병 이야기를 해주고 싶긴 하나, 지금은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한 관계로
아이가 완치되고나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택을 하며 아이를 돌본지 2달 남짓 되었는데
처음엔 아이의 회복 속도가 무척 빨랐다.
치료받는 곳에서는 최소 1년은 생각하셔야 할 거라 했는데
막 한달만에도 다 나을 기세로 처음 1,2주는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르게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길면 1년까지 재택을 받아주겠다 했지만 나는 한 서너달이면 복직이 가능할거라 생각하기도 했지.
그런데 치료받는 곳에서는 처음만 바짝 좋아지는 거고, 곧 명현현상이 나타날거라 했다.
진짜 좋아지기 전에 잠시 한층 더 상태가 악화될거라 했는데
그때가 되면 아이가 엄청 보채고 울고 떼쓰고 엄마말도 안듣고 해서 엄마가 진짜 견디기 힘들어질거라고
그 시기를 잘 견뎌내셔야 하니 각오 단단히 하라 했다.
처음 막 급격히 좋아지는 시기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재택을 시작하고 치료를 받은지 한달이 지난 언제부턴가 그 명현현상이 뭔지 알 것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고 떼쓰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데
때맞춰 장마가 왔다.
원래 어린 아이들은 비가 오면 컨디션이 더 나빠지고 많이들 힘들어한다.
매일 쏟아지는 비에 아이는 한층 더 악마로 변해;;가고 있는데
또 때마침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설사하고 토하고 아무것도 못먹고 힘 하나도 없이 그렇게 떼쓰고 울고 엄마를 괴롭힌다.
그리고 약해질대로 약해진 아이는 감기까지 걸렸다.
이건 뭐, 나더러 죽어보라는 건가.
비교적 칼퇴근을 하며 회사를 다니는 남편도 요즘들어 일이 많다며 야근이 잦다.
지난주에는 아이의 컨디션이 바닥을 쳤고,
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돌보다보니 나의 컨디션도 바닥을 쳤다.
10킬로도 훌쩍 넘는 아이를 달래기위해 하루 종일 업고 생활을 하다보니 허리가 끊어질 지경에 마침 생리 크리.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온 뼈마디가 끊어지는 것 같고 서 있을 힘 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친정집을 향했다.
나는 원래 좀, 친정 부모님에게 힘든 내색 하는 걸 많이 꺼리는 편이라
항상 "결혼하니 아이 행복해♡" 모드의 이야기만 하지, 절대 힘들다 죽겠다 이런 소리를 친정 가서 하지 않는다.
뭐, 내가 백날 "하나도 안힘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척" 연기를 해도 엄마는 내 얼굴만 봐도 다 알지만.
엄마도 내 아이의 상태를 잘 알기에 요즘 내가 좀 아이 돌보는 걸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실제로 다 지켜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을거다.
그랬는데 이번에 결혼 후 처음으로 애를 데리고 친정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니
엄마도 나의 하루를 온전히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던 거다.
나는 집에서 하루에 단 5분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쉬는 적이 없다.
아이가 집안 내에서도 제가 가고싶은 곳으로 나를 질질 끌고 다니고
그나마도 아이가 혼자 나를 끌고 다니면 좀 나은데, 그게 아니면 종일 아이를 안고 있거나 업고 있거나 해야한다.
아이도 많이 힘드니까 내 손길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뭐, 그래도 내 아이고, 나는 엄마니까 이 모든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힘든 시기도 금세 지나갈거라 생각하니 또 어떻게든 버텨는 진다.
근데 친정엄마는 꼭 그렇지가 않은가보다.
우리 엄마는 좀 모성애가 유난한 분인데 그 모성애는 과년한 딸년이 다 커서 시집가고 애까지 낳아도 그대로 인가보다.
아이가 계속 칭얼대고 울면서 나를 힘들게 하면 엄마는 아이에게
"**아, 너 왜 이렇게 니 엄마를 힘들게 하니.. 얘는 니 엄마기 전에 내 딸이야. 너 자꾸 내 딸 힘들게하면 할머니가 너 혼내줄거야"
라고 반 농을 치신다.
저 말은 참..
'남들은 자식보다 손주가 더 이쁘다는데, 울 엄마는 손주가 별로 안이쁜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나도 아직 어른이 덜 되었는지 엄마의 저 말이 그렇게 힘이 되더라고.
가끔은 '엄마'의 노릇을 하고 있는게 힘이 들고 벅찰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자식 입장으로 내 '엄마'에게서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 덕분에 나도 또 '내리사랑'을 내 아이에게 불만 없이 물려주게 된다.
아이가 밤에도 잠을 잘 못잔다.
친정집에서 자던 그 날도 새벽 2시까지 못자고 칭얼대던 걸 겨우 업고 재웠는데
4시가 채 안되어서 아이는 다시 깨고 두시간을 울었다.
좀 도와주고 싶어도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으니 아이에게 손도 대지 못하던 친정엄마, 아빠는
딸년의 고생을 그냥 지켜보기 힘드셨는지 새벽 두시에 약주를 하시겠다고 같이 나가셨다.
엄마는 아빠를 붙들고 울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이고... 이 미련한 년.. 그러게 뭐 좋다고 일찍 시집을 가서 이 어린 나이에 고생을 해 고생을.."
(참고로 나는 서른되기 직전에 결혼했음 -_-;;; 지금은 서른도 훌쩍 넘겼고 남들이 볼때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닌데;;;;)
그 이야길 듣고 나는 "결혼해서 마냥 햄볶아염 ♡" 모드를 엄마 앞에서 멈추어버린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그냥 또 그걸로 힘이 났다.
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느라 몸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이었는데
내가 다시 엄마 속 썩이는 딸이 되면서 엄마의 사랑을 빨아먹고 충전한 기분이랄까.
다음 날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렇게 힘든지 몰랐지? 이게 다 좋아지려고 그런거라는데 요즘은 힘들어서 우울증 올거같다니까 아주 ㅋㅋ 얘가 얼마나 잘 자랄라고 이렇게 엄마 진을 빼나 몰라?"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정신 나간년이 아이 때문에 정신 돌아오는 건 봤어도 아이때문에 멀쩡하던 정신이 나가는 년은 못봤다.
영화보면 왜 미친년도 지 애는 업고 뛰어댕기지 않드나? 엄마는 다 그런거다. 너도 우울증이고 뭐고 택도 없다. 엄만 다 그런거다"
그래, 엄마는 다 그런거겠지.
엄마는 원래 씩씩한거니까.
엄마는 원래 강한거니까.
이렇게 꿋꿋하게 또 엄마노릇을 하며 살다보면
언젠가 훌쩍 커버린 아이가 가끔 지쳐서 축 쳐진 엄마에게 말 하는 날도 올거야.
"엄마, 힘내" 라고.
그 날까지만 내가 잘 견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