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글들

2011.07.10 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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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반말로 할게요.

 

 

요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아이가 아직 많이 어린 편인데 장애가 있다고 하고, 엄마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하여 시작된 것인데..

천만다행으로 회사에서 이해해주어서 재택근무(라 쓰고 월급도둑질이라 읽는다)를 하게 됐다.

아이의 장애는 뭐라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후천적이고, 100% 치료도 가능하고(모두가 다 100% 완치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장 긍정적인건 아이가 아주 어릴때 발견해서 치료도 쉽고 완치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라는 것.

이 내 아이의 병은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엄마 아빠가 된 -_-들이라면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언젠가 꼭 여기에 이 병 이야기를 해주고 싶긴 하나, 지금은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한 관계로

아이가 완치되고나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택을 하며 아이를 돌본지 2달 남짓 되었는데

처음엔 아이의 회복 속도가 무척 빨랐다.

치료받는 곳에서는 최소 1년은 생각하셔야 할 거라 했는데

막 한달만에도 다 나을 기세로 처음 1,2주는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르게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길면 1년까지 재택을 받아주겠다 했지만 나는 한 서너달이면 복직이 가능할거라 생각하기도 했지.

 

그런데 치료받는 곳에서는 처음만 바짝 좋아지는 거고, 곧 명현현상이 나타날거라 했다.

진짜 좋아지기 전에 잠시 한층 더 상태가 악화될거라 했는데

그때가 되면 아이가 엄청 보채고 울고 떼쓰고 엄마말도 안듣고 해서 엄마가 진짜 견디기 힘들어질거라고

그 시기를 잘 견뎌내셔야 하니 각오 단단히 하라 했다.

 

처음 막 급격히 좋아지는 시기에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재택을 시작하고 치료를 받은지 한달이 지난 언제부턴가 그 명현현상이 뭔지 알 것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고 떼쓰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데

때맞춰 장마가 왔다.

원래 어린 아이들은 비가 오면 컨디션이 더 나빠지고 많이들 힘들어한다.

매일 쏟아지는 비에 아이는 한층 더 악마로 변해;;가고 있는데

또 때마침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설사하고 토하고 아무것도 못먹고 힘 하나도 없이 그렇게 떼쓰고 울고 엄마를 괴롭힌다.

그리고 약해질대로 약해진 아이는 감기까지 걸렸다.

이건 뭐, 나더러 죽어보라는 건가.

비교적 칼퇴근을 하며 회사를 다니는 남편도 요즘들어 일이 많다며 야근이 잦다.

 

지난주에는 아이의 컨디션이 바닥을 쳤고,

그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돌보다보니 나의 컨디션도 바닥을 쳤다.

10킬로도 훌쩍 넘는 아이를 달래기위해 하루 종일 업고 생활을 하다보니 허리가 끊어질 지경에 마침 생리 크리.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온 뼈마디가 끊어지는 것 같고 서 있을 힘 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들쳐업고 친정집을 향했다.

나는 원래 좀, 친정 부모님에게 힘든 내색 하는 걸 많이 꺼리는 편이라

항상 "결혼하니 아이 행복해♡" 모드의 이야기만 하지, 절대 힘들다 죽겠다 이런 소리를 친정 가서 하지 않는다.

뭐, 내가 백날 "하나도 안힘들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척" 연기를 해도 엄마는 내 얼굴만 봐도 다 알지만.

 

엄마도 내 아이의 상태를 잘 알기에 요즘 내가 좀 아이 돌보는 걸로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실제로 다 지켜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을거다.

그랬는데 이번에 결혼 후 처음으로 애를 데리고 친정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니

엄마도 나의 하루를 온전히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던 거다.

 

나는 집에서 하루에 단 5분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쉬는 적이 없다.

아이가 집안 내에서도 제가 가고싶은 곳으로 나를 질질 끌고 다니고

그나마도 아이가 혼자 나를 끌고 다니면 좀 나은데, 그게 아니면 종일 아이를 안고 있거나 업고 있거나 해야한다.

아이도 많이 힘드니까 내 손길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뭐, 그래도 내 아이고, 나는 엄마니까 이 모든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힘든 시기도 금세 지나갈거라 생각하니 또 어떻게든 버텨는 진다.

 

근데 친정엄마는 꼭 그렇지가 않은가보다.

우리 엄마는 좀 모성애가 유난한 분인데 그 모성애는 과년한 딸년이 다 커서 시집가고 애까지 낳아도 그대로 인가보다.

아이가 계속 칭얼대고 울면서 나를 힘들게 하면 엄마는 아이에게

"**아, 너 왜 이렇게 니 엄마를 힘들게 하니.. 얘는 니 엄마기 전에 내 딸이야. 너 자꾸 내 딸 힘들게하면 할머니가 너 혼내줄거야"

라고 반 농을 치신다.

 

저 말은 참..

'남들은 자식보다 손주가 더 이쁘다는데, 울 엄마는 손주가 별로 안이쁜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나도 아직 어른이 덜 되었는지 엄마의 저 말이 그렇게 힘이 되더라고.

가끔은 '엄마'의 노릇을 하고 있는게 힘이 들고 벅찰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자식 입장으로 내 '엄마'에게서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 덕분에 나도 또 '내리사랑'을 내 아이에게 불만 없이 물려주게 된다.

 

아이가 밤에도 잠을 잘 못잔다.

친정집에서 자던 그 날도 새벽 2시까지 못자고 칭얼대던 걸 겨우 업고 재웠는데

4시가 채 안되어서 아이는 다시 깨고 두시간을 울었다.

좀 도와주고 싶어도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으니 아이에게 손도 대지 못하던 친정엄마, 아빠는

딸년의 고생을 그냥 지켜보기 힘드셨는지 새벽 두시에 약주를 하시겠다고 같이 나가셨다.

 

엄마는 아빠를 붙들고 울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이고... 이 미련한 년.. 그러게 뭐 좋다고 일찍 시집을 가서 이 어린 나이에 고생을 해 고생을.."

(참고로 나는 서른되기 직전에 결혼했음 -_-;;; 지금은 서른도 훌쩍 넘겼고 남들이 볼때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닌데;;;;)

 

그 이야길 듣고 나는 "결혼해서 마냥 햄볶아염 ♡" 모드를 엄마 앞에서 멈추어버린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그냥 또 그걸로 힘이 났다.

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쏟느라 몸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기분이었는데

내가 다시 엄마 속 썩이는 딸이 되면서 엄마의 사랑을 빨아먹고 충전한 기분이랄까.

 

다음 날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렇게 힘든지 몰랐지? 이게 다 좋아지려고 그런거라는데 요즘은 힘들어서 우울증 올거같다니까 아주 ㅋㅋ 얘가 얼마나 잘 자랄라고 이렇게 엄마 진을 빼나 몰라?"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정신 나간년이 아이 때문에 정신 돌아오는 건 봤어도 아이때문에 멀쩡하던 정신이 나가는 년은 못봤다.

영화보면 왜 미친년도 지 애는 업고 뛰어댕기지 않드나? 엄마는 다 그런거다. 너도 우울증이고 뭐고 택도 없다. 엄만 다 그런거다"

 

그래, 엄마는 다 그런거겠지.

엄마는 원래 씩씩한거니까.

엄마는 원래 강한거니까.

 

이렇게 꿋꿋하게 또 엄마노릇을 하며 살다보면

언젠가 훌쩍 커버린 아이가 가끔 지쳐서 축 쳐진 엄마에게 말 하는 날도 올거야.

 

"엄마, 힘내" 라고.

 

그 날까지만 내가 잘 견뎠으면 좋겠다.

 

2011.07.10 14:24:32
1.   -_-
글쓴이 엄마 완전 멋짐;
2011.07.10 14:30:04
2.   -_-
아 뭐 찬바람이 지나갔나 코 끝이 시큰하네
2011.07.10 14:31:33
3.   -_-
정신 나간년이 아이 때문에 정신 돌아오는 건 봤어도 아이때문에 멀쩡하던 정신이 나가는 년은 못봤다

이거 한마디로 모든게 설명됨.

글쓴도 힘내
2011.07.10 14:39:26
4.   -_-유부
엄마가 짱이에요.

아빠들은 감히 엄두도 못내는;
2011.07.10 14:41:17
5.   -_-
힘내요 엉엉
2011.07.10 15:15:25
6.   -_-
그래서 무슨병?
2011.07.10 15:17:03
7.   -_-
이런게 여자의 진정한 힘.
2011.07.10 15:34:50
8.   -_-
울컥하네요~
꼭 완치되서 그땐그랬지 라며 허허 거리실거라 믿어요~!!
2011.07.10 16:08:31
9.   -_-
힘내요. ㅜㅜ
2011.07.10 17:46:51
10.   -_-
우리 엄마한테 이 글 보여주고 싶지만. 무표정에 가족을 들이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으리....
2011.07.10 17:48:15
11.   -_-
엄마란 그런건가봐요.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해도 손주 이전에 내새끼;;
손주때문에 내 새끼 힘든거 보면 당연히 엄마는 속상하죠.
글쓴 힘내요. 그래도 어쩌다 한번쯤은 단 한 시간이라도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들고요.
엄마가 그래도 한숨 돌려야 애도 더 잘 볼 수 있어요.
엄마라고 마냥 강하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견디고 버티는 것 뿐이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힘내요. 다 잘 될 거예요.!!
2011.07.10 17:55:35
12.   글쓴
힘내라고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ㅠㅠ
사실 오늘 일이 너무 밀려서 아이는 잠시 아빠에게 맡기고 출근했어요.
혼자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저녁이 다되어가서 배고파서 컵라면사러 슈퍼다녀왔는데
지금 왜 내 책상엔 캔맥주가 놓여있는거지;;;; 음주업무; 중입니다.
일하러 왔는데 완전 휴식시간같네요.. 덕분에 이렇게 글도 싸지를 틈도 나서 잠시 끄적거렸구요.
얼렁 끝내고 또 아이보러가야지!!
2011.07.10 18:07:34
13.   -_-
육아에 업무에... 이 시대의 여자들은 진정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죠.
이놈의 사회구조는 갈수록 팍팍해져만 가니... ㅠㅠ
2011.07.11 00:18:11
14.   -_-
아이 빨리 완치되기를 빕니다.
2011.07.11 01:15:34
15.   -_- 유부
글쓴분께는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혹시 아이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어떻게 발결하게 되셨고 증상이 어땠는 지 등을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둘째를 낳아 이제 4개월이 되었는데, 첫째 아들 녀석과는 너무나도 다른 딸년의 성장에 모든 게 비정상이 아닌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고 조심스럽습니다.

어쩌면 괜한 걱정만 더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글쓴 분께는 안좋은 걸 다시 한 번 되묻게 되는 것도 되는데, 그래도 왠지 여쭤보게 되네요.

답변이 하기 싫으시거나, 질문 자체가 불편하시다면 알려주시면 삭제하고 사죄하겠습니다.
2011.07.11 02:08:20
16.   글쓴
15 번님, 실례될 건 없어요. 다만 여기에 아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하니까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뿐 이거든요. 내가 아픈거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데 거리낄 게 없는데 아이가 아픈 것이다 보니 가려가며 말하려는 거고요.. 아이가 완전히 낫고 나서는 뭐 "이랬었다" 하고 말 해도 될까싶어 그때 되어 이야기해볼까 했죠. 유부님들도 많으시다보니 알아두시면 좋을 것도 같았구요.

15번님 아이는 아직 4개월이라 하니 제 아이의 증상과는 큰 상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4개월령에 성장이 비정상으로 보일 게 무어가 있는지 잘 감이 안오네요. 참고로 제 아이는 세살이거든요.
그 래도 4개월 아이를 생각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비정상적인 성장이라고 하니 제 아이의 증상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한데, 괜찮으시다면 비밀글로 이메일주소 알려주시면 제 아이 이야기 중 궁금해하시는 부분 말씀 드릴게요. 괜찮으시다면 15번님이 우려하시는 부분이 어떤쪽인지 비밀글로 대충 말씀해주시면 제 경험이 도움이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2011.07.11 10:24:46
17.   -_-15
비밀글 입니다.
2011.07.11 11:02:21
18.   -_-
아이씨.. 아침부터 눈물나네..
엄마~~
2011.07.11 13:48:04
19.   -_-
예외에 해당될지도 모를 못난 부모 입장에서 눈시울 시큰거리다 갑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버티시면 꼭 몸도 마음도 완전히 건강해진 아가랑 엄청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가질 수 있으실 거라 믿습니다.
2011.07.11 14:26:44
20.   글쓴
15번님. 메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빨리 낫길 바란다고 좋은 말씀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네요.
2011.07.11 18:11:37
21.   -_-유부
아이가 한번이라도 아파서 심하게 보채본 적이 있는 유부들은 절절히 공감이 갈듯. 힘내 글쓴.
2011.07.11 23:15:16
22.   -_-
둘째가 얼마 전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세상이네요...ㅠㅠ
2011.07.12 00:59:20
23.   -_-
전업으로 애만키워도 힘에부쳐서 허덕거리는데
힘내세요.
우린 엄마니까요.
2011.07.12 20:09:35
24.   McQueen
사무실에서 눈물이 핑~
글쓴은 정말 멋진 엄마!
그리고 멋진 여자, 멋진 사람.
힘내요!

아니, 글을 보며 오히려 내가 힘을 받는 느낌이네요.
집에 가면 집사람이랑 애들한테 더 잘해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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