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생활은 널널한 편이었다.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도 꼬박꼬박 나오고, 가끔 자주 공강도 있다.
또 시간표만 잘 짜면 전날 술 먹고 퍼질러 자다가 점심에 해장을 하면서
느지막이 수업을 들으러 가도 됐다.
그리고 그런 수업도 6시가 되기 전에 끝났다.
가끔 빡셀 때가 있었다.
어쩌다가 과제가 몰리거나, 시험 기간일 때 빡세기는 했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시험을 다 찍고 나오면, 그래서 이제 좀 피곤하다 싶으면,
어느새 또 방학이라고 놀러 다닐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대체적으로 학교 다닐 때에는 언제나 에너지가 충만했었다.
물론 더 젊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생활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던 덕이었다.
에너지가 고갈 되었던 건 돈이 떨어지거나 여자한테 차였을 때-_-정도?
직딩이 되고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이 곳은 대학과는 달리 공강이 없고, 방학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전날 술을 마셔도 대출이나 지각은 상상도 못한 채
정해진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잘 다려놓은 양복을 입고 앉아있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그러니까 대략 기말고사 직전이 되어 과제가 넘쳐 밀려나고, 바로 또 시험 공부를 해야 할 때,
직딩 생활은 그런 시간이 방학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막 교수랑 조교가 강력한 압박 수비를 펼치고 과제 잘 못했다고 한 소리 하는-_-;;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
이 곳에 적을 두고 있는 동안에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신 정력과 총기와 용기와 기백 등, 많은 것들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나는 아직 직딩질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생활을 몇 년을 더 하고 십 몇 년을 더 하고, 몇 십 년을 더 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 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_-의 모습을 보고 알 수 있겠다.
그런 직딩들이 유일하게 연달아 쉬는 게 바로 여름 휴가다.
역시 여름은 노출의 계...
역시 여름은 휴가의 계절.
아 시밤 그거 1년에 며칠이나 쉰다고 눈치 팍팍 주고 정말 치사빤스
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긴 가야지.
애초에는 7말8초를 피해서 지난주에 다녀오려 했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급작스레 보직이 변경되었다.
요즘 회사가 뒤숭숭한데, 얼떨결에 내가 일손 후달리는 현재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 팀장과 면담을 하던 중, 휴가는 다녀왔느냐고 묻는다.
아니요, 다음주에 가려던 생각이었습니다.
음. 우리 팀은 지금 아무도 못갔어-_-
난 그저 -_-; 하며 말없이 똥씹은 웃음만 지을 뿐.
그렇게 휴가 물건너 갔나 싶었더니, 상무가 부장을 갈구면서 구원의 한마디를 던진다.
“그래도 애들 휴가는 보내라.”
아놔...이쓰...
비록 계획보다 2주 늦게 가게 되는 일이지만
뭐 걍 초딩들 방학 끝날 때라 조용히는 다녀올 수 있을 거라 자위했다.
원래는 여자친구랑 어디라도 가볼까 했는데,
마침 제주도에서 곶자왈 뮤직 페스티발을 하고,
심지어 문샤이너스, 언니네 이발관, 퓨처라이거 등이 나온다길래
겸사겸사 친구들이랑 같이 제주도엘 다녀오기로 했다.
시간이 길지 않으니 퇴근 후에 바로 공항 고고싱 해서 금요일 밤도 살리기로 했다.
직딩 간지를 살리기 위해 콘도도 스위트-_-디럭스 형으로 잡고,
“일요일 비행기 티켓이 비싸니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귀경하는게 좋겠다.
그런데 친구들은 ‘아쉽게도;’ 일요일에 올라가야겠네.”라는 내 마스터 플랜-_-으로
여자친구에게 공지와 설득을, 다른 친구들에게 회유와 압박-_-을 했다.
아, 아름다울 우리의 제주도 푸른밤~
그러더니만 기쁨도 잠시, 며칠 뒤 상무인가 부장인가가 재자 공지를 내린다.
“가끔 휴가 5일씩 가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걍 이틀만 다녀와라-_-“
아, 정말 쪼잔하다. 내가 하룻동안 일을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렇게 치사하게 굴어.
그래도 제주도 푸를밤 있으메 웃는다 하는데, 느닷없이 여자친구가 뺀찌를 놓는다.
너에게 휴가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네 친구들과 가기에 좀 뻘쭘하니 그냥 친구들이랑 잘 다녀오란다.
뭐 그냥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있겠으나, 문득 며칠 전에 내게 했던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 혹시 거기 가면 우리 둘이 자는거야?”
하던 그 질문이 생각나 몹시도 아쉬웠다-_-;;
(여자친구랑 만난지 얼마 안돼서, 아직 안-_-했다;;)
그리고 엊그제 또 다른 친구가 못 가겠단다.
집에 일이 생겼다나 어쨌다나.
시발련; 애초에 설레발이나 치지 말지T_T;;
결국 제주도는 남자 둘이 가게 생겼구나.
그래, 우린 애초에 여자 따윈 필요 없고, 문샤이너스와 퓨쳐라이거를 보러 가는 거다.
우린 음악을 좋아하니까.
실망은 접어두고 다음지도 로드캠을 찍어보면서 동선도 짜며,
거기 여자 둘이서 온 일행을 어떻게 꼬셔볼까-_-고민하는데
엊그제 정말 예상치 못했던 김대중 선생의 서거.
그리고 세계는 멸망했다는 게 아니고
그리고 공연은 취소됐다.
난 누군가, 또 제주도는 어딘가.
나는 왜 제주도에 가는가.
우리가 여자를 꼬실 수 있을리 없잖아.
우린 아마 안될거야. 그냥 똥돼지랑 물회 먹으며 요양이나 하자ToT
2009.08.20 21:16:47
11. -_-
2009.08.20 21:58:01
12. -_-
2009.08.20 22:18:49
13. -_-
2009.08.20 22:51:56
14. -_-
2009.08.20 22:57:44
15. -_-
2009.08.20 23:39:20
16. -_-
2009.08.20 23:52:17
17. -_-
2009.08.21 00:07:41
18. -_-
2009.08.21 00:56:25
19.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