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주식 담당자에요.
겉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직업이에요.
손익예측자료 같은 것들 만들어 여의도로 나가 애널리스트들에게 설명하는 장면만 보면
왠지 차도남;이나 뉴요커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이 직업은 늘 지옥; 속에 살아요.
언젠가부터 난 월급쟁이가 아니라 하우스; 꽁지;; 같다는 생각도 해요.
노름판에서 돈 잃고 꼬장 피우는 아저씨들을 본 적이 있다면
주식으로 돈 까먹고 진상 부리는 개인주주들은 그 분노의 100배를 품었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하루하루 탱킹;;의 연속이에요. 아무도 힐;; 안 줘요. 자생이에요.
이 일을 하다보면 연락 끊긴 친구들에게 전화가 많이 와요.
"나 초딩 동창 개똥인데 잘 지내지? 야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언제 술 한잔 하자.
근데 너 주담이라며? 소스 없어?"
뭐 이런 발사믹소스 같은 새끼가 다 있나 싶지만, 사람들이 그래요.
욕망이 넘치면, 살면서 제일 필요없는 게 양심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들이에요.
친한 친구들하고 멀어질 때도 있어요.
"그렇게 중요한 계약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을 해줬어야지! 니가 친구냐?"
도대체 사람들은 친구의 정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_-
월급쟁이를 하다보면 가끔 별 이상한 일도 하게 되는 건 다들 아실 거에요.
회사에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해야 되는 중요한 결정이 있었어요.
그런데 의안을 통과시키기에 우호지분이 좀 부족했어요.
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모으러 다녀야 했는데
예탁원에서 보내오는 주주명부에 전화번호는 없어요.
주소만 보고 무작정 찾아가야 해요. 이거 뭐 런닝맨 미션도 아니고.
찾아가보면 여러 케이스가 나와요.
1) "빈 손으로 온 거야? 내가 들어간 돈이 얼만데 공짜로 이런 걸 받으러 와?"
이런 사람들은 비타오백 좀 사들고 다시 찾아가면 우쭐해줘서 사인해줘요.
2) "주가 2배 되기 전까지는 사인 못 해주지. 내일까지 만들어놓고 다시 와."
주주님, 하루만에 주가가 2배가 될 수는 없어요.
3) "제가 OOO인데요?"
주주를 찾았는데 초딩이 나와요. 차명;;이에요.
대치동 주주들은 아이디;; 도용이 왜 이렇게 많나요.
4) "아니 이 마누라가 또 몰래!!!"
남편 몰래 주식하는 아줌마들 집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해요.
남편이 화를 내며 뭔가를 집;;어 던져요.
5) "밥은 먹었어?"
해운대 고급 아파트에서 영지버섯을 넣고 푹 고아서 우려냈다던 물을 주시던 어느 영감님은
"내가 여기저기 많이 투자를 해서 많이 찾아들 와. 주가는 어때? 뭐하는 회사인줄도 모르고
소문만 듣고 샀더니 몇억 정도 손해 본 것 같은데. 허허허허"
몇억을 손해봤다면서 웃어요. 웃는게 더 무서워요. 소름 돋았어요.
전국을 다 돌아다녀야 하는데 도저히 다 모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대행 용역 업체를 수소문 해봤어요
서초동 법원 정문 쪽에는 대형 로펌이 있고, 뒤쪽 골목로는 자잘한 로펌들이 있는데
주로 그 쪽에서 지저분한 일들을 해결해줘요. 거기서 소개받았어요.
명함상 직함은 사장인데 누가봐도 깍두기에요.
"주주총회 2박 3일 한 적도 있어~ 우리는 될 때까지 해붕께~"
말투부터 근성이 느껴지는 아저씨에요.
"애들 좀 있지? 좀 움직여야 쓰겄다."
사장님 전화 한 통화에 전국에서 동생;;들이 움직여요.
혹시나 해서 명함에 있는 회사 이름으로 등기부등본 떼어봤는데 자본금 20억;;;짜리 회사에요.
위임장 모으는 것부터 주주총회 끝나는 것까지 설명을 해주는데
저보다 상법을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요.
난 깡패들보나 못한 존재였나, 회의감이 막 몰려와요 -_-
일 끝나니까 전자세금계산서를 칼같이 이메일로 보내와요.
칼송금 해줬어요.
언젠가는 모대학 경영학 교수라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자기랑 함께 '작품' 하나 만들어보자는 말을 해요 -_-
작전을 하자는 건데 누가봐도 양아치스러운 실장을 한 명 데리고 와요.
그 실장은 오피러스를 타고 나타났다가, 다마스;;를 타고 나타나기도 해요.
작전 5건 하면 1건 정도 성공한대요.
그 오르가즘;;은 비교할 것이 없다네요.
그냥 그렇게 느끼;;며 사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주식담당자들끼리 모임을 가져요.
업종별로 뭉치기도 하고, 지역별로 뭉치기도 해요.
주담끼리 만나도 자기 회사 정보는 안 흘려요. 그냥 상사 뒷담화;;까고 놀아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경제지 기자가 모임 후원을 하겠다고 나타나요.
술값 대주고 정보 캐가겠다는 거에요.
거절을 해도 졸졸 따라다녀요.
술 취한 척 하고 확 때려-_-볼까도 생각했어요.
재테크는 이제 일상이 되었어요.
게임 캐릭터 테크 테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돈까지 테크를 태워야 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이 나라에서 월급쟁이는 월급만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기든 지든 도박판에 "히어 컴스 어 뉴 챌린저!"를 외치며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승룡권;;에 쳐;;맞아요. 아도겐~ 어어류겐~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곳에는 항상 지옥이 생겨요.
지옥의 중앙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참 씁쓸한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