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른 새벽에 주말 알바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요일 아침이라 출근하는 사람도 등교하는 아이들도 없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며 목련이 만개한 나무를 지나고 있는데
행색이 유난히 초라한 예순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팔을 허우적대며 참새들을 쫓으며 혼자서 무슨 말인가를 내뱉고 있었다.
머리가 아픈 분 같기도 하고,
아니 밤새 술을 마셔서 술 주정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 고즈넉한 아침을 깨뜨리는 불청객 같이 여겨져서 괜히 할아버지에게 화가 났었나보다.
그리고 또각또각, 굽소리를 내며 할아버지의 바로 옆을 지나는 순간,
흐린 발음의 혼잣말을 들었다.
"어디 갔다 온거냐..녀석들...허허 요 나쁜 것들~
어디 가지 말어야~ 꽃물고 봄 물고 얼른 오지 이제 왔냐~
더 크게 울어~ 짹짹짹~~허허허....허허...반갑다 반가워~
봄이야~ 이제 봄이다~~내가 기다렸어 봄을....허허....
아주 좋아~기분이 좋아야~~ 허허...나쁜 녀석들....
밤은 추운데 어디서 잤니.. 허허.."
어쩌면 알콜중독자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지능이 떨어지는 장애인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날 해꼬지 할 수도 있는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의 갈라지고 부르튼 그 입술에서는
싯구절 같은 말들이 노래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를 오해한 내가 부끄러워서?
할아버지에게 미안해서?
할아버지의 말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나도 모르게 갑자기 서러워졌다.
그 휴일 아침이 내게 너무 벅차고
너무 외롭고 너무 고단했는데
할아버지의 술주정같은, 그렇지만 시 한구절보다 더 아름답던 그 읊조림이
나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
얘야.
아이야.
힘이 드니?
많이 지쳤니?
그래도 이것보렴.
이렇게 봄이 왔단다.
꽃도 새도 노래하잖니.
너도 어서 노래를 해보렴.
고단한 짐일랑 오늘은 벗고
봄바람 타고 어디라도 날아오르렴.
얘야.
아이야.
아직 춥니?
여태 외롭니?
그래도 이것보렴.
이렇게 봄이 왔단다.
꽃도 새도 노래하잖니.
너도 이젠 노래를 해보렴.
꽃도 새도 노래하잖니.
너도 이제 노래를 해보렴.
--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꽃도 새도 노래를 한다.
나도 어줍잖은 엄살은 그만 떨고
예전처럼 꽃같이 새같이 노래하고 싶다.
한번도 외롭지 않았던 것처럼
한번도 서럽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의 아주 조금 고단한 일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햇볕 아래로 걸어가
봄의 혜택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고 싶다.
이제는 두 눈 부릅 뜨고
봄을 보아야지.
지금이 내 인생의 봄은 아니어도
마치 봄인 것 마냥 봄을 걸어가야지.
그래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