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글들

2012.01.13 00:41:34 (203.229.23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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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치매 환자시다.

 

 

 

'양반 대가집 종손 큰며느리' 라는 본인의 자부심이 무척 강하시며,

'후덕한 맏며느리' 라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진 분이셔

 

언제나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셔서, 쪽머리 단장을 하시고는

자던 우리를 깨우시던, 늘 단정하고 바른 생활을 하셨던 분이야

 

 

어릴 때 부터, 손자들을 불러 모으시고는

지금은 잠시? 기울었지만, 사실 우리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지를 시간 날 때마다 세뇌; 시키셨지...

 

어디가서든 절대로 기죽지 말고,

보는 사람 하나 없더라도, 하늘에선 조상님?께서 늘 지켜보고 계시니

언제 어디서든 부끄럽지 않도록 바른 일을 하고 정의롭게 살아라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던 분이셨어. 

 

 

세상 모두를 속일 순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고....

 

 

 

그러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9제가 끝난 이후에,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셨어

 

 

그 대쪽같은 성품으로, 자식들이 모시겠다는 청을 다 마다하시고는 시골 집으로 혼자 내려 가셔서

홀로 할아버지 묘소 옆에 지어놓은 집에서 생활하셨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이상한 기운?을 느낀 분들이 많아졌고,

 

결국엔 행동도, 말투도, 여러가지 면에서 달라진 할머니를 걱정하던 분들이

억지로 서울로 모시고 왔고, 검사를 받으셨어

 

 

결과는

저혈압, 저혈당, 영양실조 그리고 치매였어

 

 

그 이후부터는 요양병원 생활을 지금껏 하고계셔

 

 

 

치매가 걸리면, 아이처럼? 짐승처럼? 본능에 충실해진다고들 하더라

 

증상이 점점 심해질 수록, 요양원 모든 사람들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시기도 하고,

 

 

요즘은, 당신 친 자식들에게도

 

'누구세요?' '어떻게오셨어요?'

'우리 서방님 손님이지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랑채에 가서 잠깐 몸 녹이시면, 일단 술상 먼저 봐 드릴께요' 

 

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르렀어

 

요양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하시면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자손녀는 알아보시더라....

 

우리가 가끔씩 찾아뵈면, 갑자기 정신이 아주아주아주 멀쩡하게 돌아오셔

 

 

우리 이름 하나하나 불러주시고, 아주 사소한 옛날 일들 다 기억하시고 얘기하시면서 웃으시고....

 

 

우리한테도 약한 모습 보여 주시는 건

그 대쪽같던 성정에 부끄러우신 일이셨을까....?

 

 

 

근데, 요양원 담당 아주머니 말로는

특히 내 얘기를 많이 하신다고 하더라....

 

 

우리 xx가 어릴 때 부터 어쩌고 저쩌고, 결국 젋은 나이에 파; 뭐시기가 됐네 어쩌고 저쩌고

보이는 사람만 있으면, 붙들고는 그렇게 자랑을 늘어놓으신데....

 

 

우리 할머니 손자가 얼마나 많은데.... 물론 그 요양원 아주머니가

나 듣기 좋으라고, 좀 자주 찾아오라고 하는 소리겠지?

내가 가면 아주머니들 고생하신다고 조금이나마 챙겨 드리고 하니까 

 

하고 흘려듣고 있었어

 

 

 

 

지난 1월 1일에 찾아뵈었을 때

아주 멀쩡하게, 반듯하게 일어나셔서는, 나한테 가까이 오라고 하시고는 귓속말을 하셨어 

 

'내가 너 장개; 가는 자리는 가보고 죽을라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거여'

 

라고....

 

 

 

 

 

 

오늘 고객 회의가 있어서 야탑에 갔었어

 

긴 회의가 끝나고 나오니까, 밖엔 눈이 오더라

 

 

근데 왜 할머니 생각이 났었을까?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여기서 차로 쪼금만 더 들어가면 계신데.... 잠깐 짬내서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담배 한 대 피는 도중에 바로 접었어....

 

 

 

 

우리 할머니는,

나를 보는 그 순간, 다시 기억이 돌아오실테고

 

니가 뭐가 모자라서 아직도 장개; 못갔냐고 하실테고,

 

 

 

난,

그런 할머니를 보는 그 순간,

 

 

저 전에 말씀드렸던, 세상 사람들이 다 반대하는 그 어린애랑 아무도 모르게 둘이 지금 같이 살고있어요....

아직도 너무너무 힘들고 도망치고 싶지만,

 

그래도 전 그 아이를 사랑해서 행복해요

 

라고 말해버릴 거 같아서

 

수정
1.   -_-
어우... 야......
수정
2.   -_-
흑 나 울어버렸어 아아아아 센치해
수정
3.   -_-
아... 무낙; 사이트...
수정
4.   -_-
겨울은 이렇게 깊어가는구나..
수정
5.   -_-
말해! ㅠㅠ
수정
6.   -_-
할머니한테 가! 가란말야!! ㅠㅠ
수정
7.   -_-
어우 야..나름 반전이네 ㅠㅠ
수정
8.   -_-
단둘이 할머니한테 인사하러 가세요... 부모님 모르게..
수정
9.   -_-
세사람에게 봄이 찾아올겁니다.
수정
10.   -_-
마지막말은 진짜?
수정
11.   -_-
아무쪼록 좋은 일 있으시기를~~
수정
12.   -_-
세상 모두를 속여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고 가르치신 할머니와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세상을 속이는 글쓴이 뭔가 아련하고 애절합니다.
수정
13.   -_-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
몰래 같이 살다시피 하고있는 여자친구도 생각나고.
그걸 글쓴은 합쳐서 하고있다는거지; 대단하다.
수정
14.   -_-
나는 초딩 4-5학년때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 다 집에서 모셨었는데
특히 할머니 치매가 무지 심했어. 
그래서 엄마가 빨래 싹 해서 장농에 넣어놓으면 변; 보신거 
서랍속에 넣어서 숨겨;두시고 벽에 칠해두시고 그랬지. 
마당에 나가서 강아지들 오줌싼거 가지고 노시고 그랬어. 
엄마가 많이 힘들어했고 많이 울었지. 
그래서 난 치매라면 지긋지긋해. 

...그래도 글쓴은 할머니한테 자주 갔으면 좋겠어;
수정
15.   -_-
13 // 안 돌아가셨다;;
수정
16.   -_-
어떤 의미로 13이 대단한데;?
수정
17.   -_-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도 똑같은 소리를 하셨었는데,
내가 장개가는건 보고 가야겠다고.
결국 손주 장가가는것도 못보고 내내 병으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병원이랑 요양원에 있을때 자주 찾아뵈지 못한게 많이 후회가 됩니다.
정말로 후회가 많이 되요.
수정
18.   글
어제 눈이 와서, 더 할머니 생각이 났었나봅니다....

시골집이 깊은 산골이라 눈이 참 많이도 왔었는데
눈이 쌓여있으면, 세상이 다 깨끗해진것 같다면서, 밝게 웃으시던 모습이 또 기억이 나네요


어제 할머니께 말씀 드렸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ㅎㅎ



하지만 또 여기저기 자랑?을 하실 걸 알기기도 하고, 
혹시라도 이제 할일 다 하셨으니 가셔야겠다고 힘을 빼실까봐....

차마 못갔습니다....



남은 일정은 눈 핑계로 다 미루고
가까운 정자동에 혼자 사는, 한번 갔다온 불알친구랑 술마시면서 주절주절 대다가


14평 쪼끄만한 오피스텔에 오니 우리 아기는 벌써 자고 있더라고요


잠이 안와서 술김에 주저리주저리 글써놓고 
또 자려다 잠이 안와서 집앞 단골집 가서 셔터 내리고 밤새 또 마시고
다시 오피스텔로 기어들어와서 지금껏 실컷 잤습니다 
(파트너가 되고나니 이거 하난 좋네요ㅎ)


일어나보니 저 혼자 있네요^^ 


좀 더 큰 집 해줄 수 있다는데도, 칸막이;가 있으면 오빠랑 멀어지는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굳이 고집해서 여기로 이사왔었지요


심한 우울증에 인지장애 등등을 겪고 있지만,
여기서 같이 부대끼며 산지 8개월이 지났고,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양가에서 다 반대하고, 한때는 경찰서까지 들락날락 할 정도로 안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제가 좀 더 성장해서, 내가 꾸린 이 가정이 양가 모두에게
아니,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날이 될 때 까지는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이번 주말에는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야겠습니다.


물론 혼자 가겠지만,


할머니 손자 믿지? 걱정마 라고 손 꼭 잡고 말씀드리고 와야겠습니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19.   -_-
아... 헤어지시는 줄 알았더니.
결국 다시 만나서 알콩 달콩 사시는군요.
폭풍같은 연애 하십니다 그려...

그나저나 파트너 부럽ㅜ
수정
20.   -_-
'젊은 나이에 파; 뭐시기가 됐네'는 도데체 뭘까??

파수꾼??

파수병??

파워쎆쓰??

파김치??

궁금궁금 함여~~
수정
21.   -_-
ㅠㅠ 아 폭풍눈물;;;증말 무낙사이트 맞아!글쓴 힘내!!글쓴은 자신에게 솔직한 남자잖아!!완젼 멋져!!!!
수정
22.   -_-
더 행복해 지기실 바래요..

(^-^)

더 자주 찾아가세요..

나중엔 나중엔.. 못가는거에요..
수정
23.   -_-
20 // 

바보야
파출부잖아
수정
24.   ㅅ
21 멍충아 파륜궁;;이라고 

드래그해보면 나오잖냐!
수정
25.   -_-;
할머니 뵙고 왔습니다,,,ㅋ

차라리 내가 갔음 좋겠네요 ㅎㅎ

ㅆㅂ


누가 알까요??
수정
26.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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