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력에 걸린 채로 시험을 친 뒤 터덜터덜 버스를 탔다.
마침 출구쪽 2인석이 한자리 남아있다. 앉았다.
오른쪽을 보니 이쁘장한 누님이 한분 앉아계신다.
요즘 유행하는 핫핑크의 나시에 튀지 않는 화장.
단아한 얼굴에 허리까지 올 것이 틀림없는 머리를
멋들어지게 포니테일로 묶었다.
짐작해 볼 때 166 정도의 적당한 키에 아담한 몸매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몸을 감동시키는 것은,
무릎 위로 15cm은 올라오는 화이트의 주름 치마.
적절하게 달려 있는 레이스가 그 품위를 더한다.
아, 세상은 살만한 거야-
하고 희희낙락하고 있을 무렵.
앞에서 웬 초딩 하나가 탄다. ...라고 넘어갈 게 아니다!
이 초딩 또한 뭔가 남다르다.
상,하의가 아마 학교 체육복인 듯, 세트로 맞추어져 있다.
화이트를 베이스로 한 평범한 체육복에 검은 스트라이프와
핑크의 무늬로 튀지 않지만 심심하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란색의 책가방을 들고 있는데, 자칫 튈 수도 있는 색을
자신의 분위기로 포용하고 있다. 어린아이다운 동글동글한 얼굴에
미처 다 빠지지 못한 젖살이 순수함을 돋보이게 한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순결한 머리카락은 역히 핑크의 헤어밴드에
곱게 정리되어 있다.
아, 하루에 둘씩이나 이런 사람을 이런 거리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렇다, 이걸로는 뭘 해도 그저 어, 눈호강 한번 했네~
정도로 끝난단 말이다!
자, 버스는 이윽고 달리기 시작했고, 이 초딩, 출구 앞에 선다.
...그렇다. 이몸 앞이다. 이럴 때는 너무 노골적으로 보면 안된다.
조용히 감상에 들어가자.
마침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서고, 이 초딩, 가방에서 mp3를 꺼낸다.
우와, 좋은거다. 내건 256짜린데.
이어폰도 도끼다. 나보다 좋은 거 쓰잖아? 은근히 패배감 느낀다.
그 순간, 버스가 급출발한다.
이 초딩, 이어폰을 귀에 꽂느라 손이 귀로 올라가 있다.
잡을 거 없다.
쓰러진다.
...그렇다, 내쪽이다.
초딩이,
이몸을,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나 또한 대비하지 못했기에
손을 내밀어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은 한발 늦은 시점이었다.
묵직한 중량감이 이몸을 눌러온다.
평소에는 둔감한 후각이 경종을 쌍두마차로 울려댄다.
후각을 자극하는 미묘한 향기. 이것이 유피존인가...
더운 날씨로 촉촉해져 민감해진 안면 피부로,
체육복의 감촉이 느껴진다.
평소대로라면 여기까지가 한계였겠지만,
민감할 대로 민감해진 촉각은,
좀더 많은 것을 느낀다.
체육복 안의 얇은 반팔티. 아니, 나시인가?
그리고 그 안의, 그 감촉은...
이것이 젊음인가!!!
아아, 고래로 위대한 깨달음은 말로 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완전하다 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내 능력으로는 서술이 불가능하다.
영겁...까지는 오버고, 한 10분정도로는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초딩 -아니다, 이미 그녀는 보살이다. 해탈에 이르게 돕는-께서는
황급히 일어난 뒤 거듭 사과하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나 역시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멍한 정신으로 계단을 내려가 버스 밖으로 나가기 직전,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뭔가 대우주의 의지였는지, 아니면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무의식의 소망인지.
어쨋건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고,
보았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다.
조용히, 그리고 최대한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다음,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읊조리면 되는 것이다.
...나이스.
분명히 버스는 남자의 미래다.
다시 한번 말해둔다.
버스는, 남자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