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울 올라온지 얼마 안되
빚지고 대략 돈떼이고..빈털털이가 됐다.(상황설명하자면 좀 길거든)
왜 사람맘이 한 순간 홱돌때가 있자나,
그때가 아마 왔던거 같더라.
무작정 강남으로 넘어왔어.
사기당한 충격도 좀 있었고, 하루종일 먹지않고
가만히 돌아다녔어;
그러다 반포동에 있는 강남 고속터미널을 찾았고,
그냥 멍하니 있었는데, 배고픈건 물마시면 되지만,
담배가 그렇게 땡길수가 없었어.
터미널안에 설치되어있는 흡연실이 있자나. 거기서
이리저리 눈치보며 사람들한테 한까치씩 얻어 피우곤 했어.
수중에 보니 천삼백원이 전부네,,
한 점심무렵이었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한테 담배를 얻어 피우려 했어.
" 저..실례지만 담배하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 예 , 그러시죠.. "
그 사람한테서 담배하나 얻고나니 또 직접 나한테
불까지 붙여주는 친절함을 베푸는 것이 아닌가,
" 저..형씨 노숙자시죠?"
난 화들짝 놀랬다. 어떻게 알았을까?
딴사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걸 이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근데 놀랍게도 대답은 간단했다.
나한테 담배를 건네준 이 청년도 노숙자였다는 사실을..이럴수가
멀쩡하게 생긴데다가 옷도 가죽코트에 정장차림의 말쑥한
이 사내가 노숙자였다는 사실이 난 정말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 아까부터 유심히 봤었어요.."
알고보니 나보다 세살정도 적은 사람이었고,
더 놀라운건 그 때부터 우린 형동생사이가 돼버린것이다.;;(놀랍지 않은가?-_-;)
" 제 옷차림이 좀 좋쵸? 얼마전 주유소에서 한 달간 알바뗬어요."
" 왜 계속 일하지 않고?"
" 그냥 뭐 짜증나는 일도 있고,, 한 달일한 돈으로 가죽옷도 사입고..뭐 그랬어요"
" ... 그랬구나..;;; "
그렇게 이리저리 얘기꽃을; 피우다가 저녁이 되었다.
" 형, 배안고프세요?"
" 응..뭐 좀 고프기도 하고.."
" 앞으로 한 두시간만 참아요. 먹을게 생길테니깐.."
먹을것이 어떻게 생길수가 있단말인가..하지만
저녀석은 노숙의 베테랑; 뭔가가 있을것이란 확신은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시간이 흘렀고, 그 녀석은 어떠한 정해진듯한
메뉴얼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거왜 터미널안 음식점들이 있자나,
그 음식점들 앞엔 김밥들을 파는데, 식당문을 닫을 시간에
팔다가 다 못판 김밥떨이들을 노렸던 것이었어.
그 동생녀석이 다가가 식당정리하는 주인 아주머니 사정을 했고,
그 아주머닌 당연하다는듯 김밥을 건네 주는게 아닌가..
새끼..저정도면 뭘해도 했을놈 같은데-_-;
그렇게 모은 김밥이 세뭉치나 되었다.
겨울에 새벽을 노숙해서 난다는건 정말 곤혹스러울가 없었다.
그나마 터미널안이라서 한기를 덜맞을수 있다는 것뿐이지
새벽이면 추위에 떨면서 잤다가 깼다가를 반복하고,
다음날이면 피곤에 지쳐 이리저리 앉아서 졸다가를 반복해.
마땅히 아는곳도 없고 돈도없고,
그렇게 자포자기 심정으로 죽지는 못하고 그렇게 당장
다가온 눈앞에 앞가림을 하기위해 급급했던 거야.
" 형, 코엑스가자"
" 코엑스? 지금 이시간에? "
" 내가 아는 자리가 있어..잠잘자리! "
이 녀석은 명석한건지 아닌지 가끔 분간이 안갈때가 있어.
사람은 그런게 있는가봐, 머리가 좋아도 우선적으로 열정이 없으면,
허사인것 처럼 마음이 먼저고, 그 다음이 머리로 가는거..
나나 그녀석이나 삶에 대한 마음은 그다지 없다는건
서로가 인정했기 때문에 죽이 잘맞았나;? 모르겠다.
코엑스를 돌아다니다가 마침 인적이 뜸할것같은 자리가
들어왔다. 그리고 가져온 정보지등을 바닥에 깔고..그럭저럭 잘만했다.
" 일단 여기서 몇시간 눈붙이자."
" 그래.."
몇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아침이 밝아오는것을
직감할 수 있었고, 우리는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개고선-_-
밖으로 나왔다.
" 아침 먹으러 가자"
" 아침? 어디서? "
" 이쪽으로 나와서 좀 가다보면 강남 경찰서가 나와 그 쪽을 지나면
병원이 있어.. 장례식장에 가자"
" 장례식장? "
" 거기선 아무나 한 끼먹겠다고 하면, 한 상 차려주게 돼있어! "
대단하다.
역시 그 녀석 말대로 밥한끼 먹자고 하니 흔쾌히 한 상을 차려주는게
아닌가..과일도 주고, 수육반찬에ㅜ.ㅜ ..쌀밥까지;
이 녀석을 안만났으면 이런건 꿈에도 생각못했을 텐데..
어딜가나 사람은 있는 법인가 보다.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나서는 그 녀석이 말한다.
" 형, 요기 윗층에 방이 비어있는곳이 있을거야.."
" 근데? "
" 가서 자자. 방에 보일러도 들어와서 따뜻할테니까
거기가서 자자.어쩌다가 경비한테 들키는 수가 있으니깐
그 때가서 들키면 어쩔수 없는 거고.."
어떨때는 그 방 뒤편에 사람시신을 담아놓은 관이 있을때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당장 몸이 피곤한데 그렇고 자시고간에 상관이 없었다.
진짜로 방에는 보일러가 돌아 따뜻했고, 조용조용 들어가
몸을 뉘었다. 아 얼마만에 따뜻하게 자본것이란 말인가..
너무 기분좋아 그 녀석이랑 이런 저런 잡담을 조용히 나누다
잠이 들었는가 보다.
근데 우리를 깨운사람은 그곳 장례식장 직원이었다.
지나가다가 하도 코고는 소리가;심하게 들려 가봤더니
우리 둘이 떡하니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다는게 아닌가..
사람이 너무 긴장이 풀려도 문제다.-_-
다시 우리둘은 거리로 나와 계속적으로 걸었다.
걷고 또걷고..
" 형, 이번엔 강남 성모병원이야 "
" 거시가서 또 장례식장에서 밥얻어 먹자고? "
" 그럼 당근이지, 조금 있으면 저녁이니까 술도 얻어 먹자구"
그나저나 그 녀석이랑 담배도 다 떨어지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에게 담배를 뜯어내서 ; 피우기도 했었다.
저녁이 한 참 지난 후에 우리는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역시 밥한끼 얻어먹으며 참이슬 두병도 간만에
시원하게 까댔다. 얼큰한게 기분도 좋아져서 나오는 길에
소주 두어병을 더 달라고 부탁하니 상주께서는 '뭐이런 놈들이
다 있냐'는 듯한 눈으로 소주 두병을 우리에게 건네 주었다.
거기다 한 술 더떠서 동생놈이,
" 저.. 저기 우리가 서울에 올라와 갈때도 없고 돈도 다 떨어 졌거든요
당장 어디 찜질방이라도 들어갔으면 하는데, 한 이만원정도 주실수 있으세요?"
역시 강한놈이다.
" 죄송하지만, 돈은 드릴 수 없습니다."
낙담한듯한 동생놈의 표정이 보였다.
" 형, 원래가 이바닥;이 그래-_- 노숙자에게 먹을건 주어도
금전적으론 인색해, 저기 강북 어디에 가면 하루 천원정도 준다는 데도 있지만 말야"
" ............. "
그녀석이 아는 편의점이 있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봤더니 가져온 소주두병과 던힐담배랑 물물교환을 할 거란다.
대단한 놈이다 역시, 그리고 얼마후 우린 던힐을 한 까치씩 사이좋게;
나란히 피우며, 우리나라 정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갑론을박이 나갔다;;;
" 다죽여야돼 씨발 "
나온결론이라고야 고작 다죽여야돼 씨발.
" 야, 우리 내일이라도 당장 어디 일자리 알아보자"
" .......... "
" 돈이라도 좀 모으고 지방에 내려가 뭘 할건지 정해봐야 하지 않겠어? "
이 녀석이랑 좀 지내다 보니 나도 삶에 대한 어떤 노력의 열정이
생겼는지는 잘은 몰라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했거든.
" 그래,그러자.."
그녀석도 흔쾌히 응했고 .. 그날은 그냥 좀 많이 추웠지만 , 터미널에서
밤을 지샜다.
자고일어나서 근처 화장실 하나를 점거해, 깨끗하게 세면을 마친후,
아침에 가본 곳은 논현역부근에 있는 직업소개소.
마땅히 답이 안나왔다.
" 당장 소개비도 없는 상황에서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곤.."
그냥 나왔다.
전단지 배포라는 벼룩시장에 문의도 해보고,
막노동이라도 하자니 이 녀석이 또 거부해-_-("요즘같은 추운겨울엔 일거리가 없어!")
그냥 또 걸었다. 강남역을 지나치다가
아마 여기 어딘가에 일자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서로가 확신했고, 때마침 운이 좋았던지 숙식제공이 가능한
주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면접을 보고선 내일부터 출근했으면 한다고 했다.
우린 좋다고 했고, 또다시 코엑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밤 근처 재활용 헌옷수거함;에서
이런 저런 옷을 골라 쌈박하게 코디를 끝낸후 우린 서로
내일을 기약하며 또다시 구석탱이에 전단지를 깔고; 몸을
뉘었다.
난 바텐더를 하게 되었고, 그 녀석은 홀서빙을 보게 되었다.
그러더니 한 시간 후에 그 녀석이 나한테 찾아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 아무래도 난 일하는 체질이 아닌가봐"
" 뭐? 야..누군 체질이어서 하는거야? 왜그러는데?"
" 뭐야이게 그냥 뻘줌하게 서서 주문받고.."
" 야 그걸말이라고 하냐? 도대체 뭐가 문젠데? "
" 아, 아무튼 난 못하겠어, 조금전 사장님한테도 말씀드렸고..
형이나 열심히 일해, 가끔 올일있으면 올테니깐 그리 알고.."
" ................. "
그게 그 녀석과의 마지막이었다.
모를일이다. 그 녀석이 문제가 있는걸까?
아니면 직장이? 아니면 내가?
이 글은 사실 몇년전에 있었던 일이다.
오늘 보니 날씨도 많이 포근해진것 같고,
그간의 추위가 사라질 기색이 만연했지만,
아직 한기를 느낄때면 그 때의 그 녀석이 떠오른곤 해
지금은 뭐하고 지낼까?
그녀석과 둘이서 새벽무렵 고속터미널 부근을 헤매고
다닐때였다.
때마침 우리를 향해 마주오던 한 사람이 있었다.
" 어? 내가 아는 형인데? "
그녀석은 우리를 지나치던 그 사람을 예전에 알던 형이라고만 했다.
눈의 초점을 잃은채 그냥 우리를 무감각하게 보고만 치나치던 그사람을..
" 왜저러지? 예전엔 안그랬는데..뭐하다가 사람이 저렇게 맛이 갔는지 모르겠어.."
의아해하던 표정을 짓던 그 동생녀석,
설마 지금 예전에 알았다던 그 촛점잃은 눈을 가진 형처럼 되진 않았는지..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한다.
나도 한때는 잘나가던; 노숙자였던게 믿기진 않지만 말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