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과 출신이다. 그리고 나는 꼴리건이다.
문과 출신이거나 꼴리건이라면 해볼만 하다.
문과 출신이면서 꼴리건인 놈은 답이 없다.
게다가 나는 내 아버지의 결혼식을 두 번 목격했다.
왠만하면 삐뚤어진다. 나는 왠만한 놈이다.
당연히 지금은 어머니가 없다.
내가 원해서 얻은 어머니도 아니지만, 대략 15년 만에 어머니라고 부를 사람이 생겼다.
두 번째 어머니는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고등학교 교사이신 그 분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마지막 이혼 소식을 듣고는 그냥 포기했다. 세상에는 어머니가 허락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별일 아니다. 그렇지만 비뚤어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남들이 공부할 때 나는 운동을 했다. 남들이 대학가서 청춘을 즐길 때 나는 공부를 했다.
늦게 간 대학에서 나는 청춘을 즐길 수 없었다. 쓸데 없이 많은 것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 대신 할머니께서 날 키워주셨다. 대학을 갈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우시던 분이다.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우셨던 분이다.
돌아올 사랑을 바라고 사랑하시던 분이 아니었다. 그냥 날 사랑해주셨다.
조금도, 정말이지 조금도 돌려드리지 못했다.
제대를 하니 병원에 입원해계셨다.
다시 만난 것은 열흘 뒤 영정 사진 속의 미소 뿐이었다.
죄송하고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같이 따라 죽겠다고 말하던 나였다.
살자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서울에서의 삶은 팍팍했다. 학생들 과외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살았다.
삐뚤어진 성격탓에 여유자금은 모으지 않고 바로 바로 술로 바꿨다.
여자 친구도 만나봤다. 그런데 문과 출신에 꼴리건이 대한민국에서
연애를 지속할 방법은 없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남들보다 늦었다.
취업이 될 리 없다. 문과 출신에 꼴리건이므로.
그러다 중동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야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지지리 복이 없는 이 놈의 출국 일정이 연기되는 바람에 출국 전날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을 봤다.
몇날 몇일을 울었던 것 같다. 그의 삶도 나의 삶도 너무 슬펐다.
인천 공항 비행기 앞에서 나는 모든 증오와 미움을 내려놓았다.
가자 중동으로.
이명박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인천에서 오사카로. 다시 도하로 비행이 시작되었다.
오사카에 착륙하자 승무원들이 전부 바뀌었다.
그런데 저기 앞에 어떤 분이 빛을 내면서 들어오셨다.
잠실 3루석 3층에서도 이대호의 손목을 보고 이대호의 그날 컨디션을 가늠할 수 있는 내 눈이다.
글러브를 벗어나는 송승준의 그립을 보고 구종을 파악했던 바로 그 꼴리건의 눈이란 말이다.
후광 덕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꼴빠 특유의 곤조를 발휘하여 그 분 가슴에 있는 이름표를 읽어냈다.
'YUKI'........눈이란 말이군.........
정말이지 말 그대로 눈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셨다.
일본인 특유의 덧니도 없으시고, 전형적인 동양미를 갖추셨으며, 우윳빛의 피부를 가지고 계셨다.
눈 웃음이 특히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잠시 꿈꾸듯 그 분을 바라 보았다. 꼴빠의 시선을 느끼시고 불편하실까봐 이내 거두어들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중동으로 팔려간다. 하늘이 나에게 마지막 행복을 주시나 보다.
나는 전통적인 꼴빠라서 대지의 타점 하나 하나를 감사히 여기는 사람이다.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진정한 꼴빠의 마음가짐이다.
그렇게 꿈 꾸듯 비행을 마치고 카타르에 도착. 여기는 매일 매일이 아비규환이다.
현장은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해있다.
길 건너로 모래언덕이 보인다. 그 뒤에 가스를 태우는 커다란 굴뚝에서는 매일 불꽃이 피어난다.
우리는 그것이 지옥불을 형상화해놓은 것이라 말하며 자조한다.
회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친구의 친구가 카타르 항공 승무원이랜다.
그래서 어쩌라고. 여기는 카타르인데.
들쭉날쭉한 승무원의 스케쥴과 월28일을 새벽4시부터 오후7시까지 일하는 우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하 접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2주만에 스케쥴이 맞아서 그녀들을 만났다.
문득 기억난 그 이름. 'YUKI'.
그러자 그녀 일본인 승무원이 200명 가량 되고 그 중에 'YUKI'는
사직동에 꼴빠들처럼 바글 바글 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녀는 한 명의 'YUKI'를 알고 있노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YUKI'가 5월 30일 오사카-도하 비행 여부를 알 수 있는 지 물어봤다.
알 수 있단다. 이쯤 되면 트레버 호프만은 이미 사직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그녀들과 헤어진지 3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아 걸려온 전화.
그 'YUKI'가 그 'YUKI'가 맞다는 그녀의 말.
운전하다 사막에 쳐 박힐 뻔했다.
눈물로 살아온 꼴빠 30년, 이제는 울지 않아도 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이대호가 타점왕을 할 것 같다.
그리고 홍성흔이 타격왕을 할 것이다.
가르시아는 홈런왕이 되겠지.
물론 조성환은 안타왕을 할 것 같다.
도쿄 출신인 그 분은 요미우리 팬이겠구나.
나는 롯데 팬인데.
요미우리도 자이언츠였지 아마?
우리도 자이언츤데.
괜히 기분이 좋다.
매일 매일 중얼거린다.
와따시노 나마에와 꼴리건데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와따시노 나마에와 꼴리건데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와따시노 나마에와 꼴리건데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성스러운 그 분의 숙소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나는 그 분이 그 때 거기 계실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주가 지났다.
나는 주말에 눈을 보러 간다.
여기는 아라비아의 사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