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전공은 그런게 아니었는데
영상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시나리오쓰다가 영상미 생각하다 뭐 스토리보드 잡다 하다보니
잘그린 그림이 존나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뭐 잘그린 서양명화 뭐시기 이런거 책을 사다가 빌려다가 바리바리 봤다.
내가 세봤는데 내가 산 각종 미술 책이 시공디스커버리 같은 얄팍한 책에서 두꺼운 서양미술사 이슬람 미술사 같은 책까지 300권 정도
도서관에 미술책 구매 신청한 책이 400권 (거의 100% 구매해줬다 우왕 우리학교 짱, 난 진짜 이걸로 등록금은 뽑았다)
기타 여기저기서 빌려본 거 수십권.
내가 꽃히면 좀 무섭게 파고들거든
그러다 전시장을 몇번 가봤고
스크린에 맺히는 영상으로 가상현실을 탐험하게 해주는 영상미학보다, 냄새도 맡고 분위기도 즐기게 하는 전시미학이
더 우월한 가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대를 복수 전공하러 수도권의 캠퍼스까지 내려갔다. (본교엔 미대가 없었음)
긴긴 통학버스 시간
왜 지방에 내려오는거지 저 미친놈 하는 대우 받으면서
나름 재밌게 수업을 들으며, 사실은 인문학에 더 가까운 큐레이터 수업들으며 미대생 코스프레를 했다.
성별이 희소한 남자라서 더 환영받았어
단과대 농구대회-_-를 하는데 미대 전체 남자 재학인원이 4명-_-이라 못나간다고
나보고 사정하며 나가달라데
내가 키가 크거든 농구 좀 잘해서 준우승 했지..
그 대학 미대 역사상 최초라고 미대생으로 받아들여 주더라 ㅎ
그리고 대학 졸업
영상쪽은 사실 크게 관심도 없어졌고
엄청난 공급과잉 + 한국 특유의 을 착취 구조-_-로 그 바닥에 들어가기 위해 2년 이상의 헐값 노동 + 인간성 파탄 이란
기회비용을 투입하는게 싫어서 어떻게든 미술판에서 살아보려 했어
내가 원하던 거였고
-_-
음
이리를 피하니 호랑이가 달려드네
아. 씨발 큐레이터 지망 학사가 취업이 될리가 있나
그 세계에선 학사 = 중졸, 석사 = 고졸, 박사 = 대졸 겨우 취급받는 학력인플레 쩌는 세계더라
대학원을 가볼까 했는데, 아 쒸발 등록금.. 나도 집이 점점 어려워져서
어디 갈까 하고 알아봐야했는데 나는 당시 얼마나 멍청했는지.. 음 기니까 짧게 하자
그래서 이런저런 잡-_-에서 월급 떼먹히고, 혼자 울고 전전하며 1년 날리고,
겨우 내 노력의 대가가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값어치를 발하는 세계를 찾았어
월급 못받는걸 그냥 체념하던 어설프게 잘살고 경제개념 없는 어른아이들이 많던 세계에서
회사의 복지와 내가 하는 일 대비 보상등을 따지며 영업에 헌신적인 직장인; 들이 가득한 세계
전시가 아니라 산업전시-_-라는 expo의 세계야
거기서 내가 그간 열심히 봐온 그림들과 소설들과 영화들과 이야기꾼 자질이
대 정부영업 제안서 작성-_-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
피티는 환상을 파는거야;
씨발 장표 하나하나 디자이너랑 예술하면서 만들어 줫지
뭐 이런식이었어
뭐 사용자와 소비자가 단절된다면,
대부분의 경영학 배운 애들은 그냥 벽을 하나 치고 말고, 이 벽을 없어주겠다면 그냥 벽을 지우고 말잖아./
나는 그걸 그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에서 아담이랑 신이랑 손으로 교감 하는부분 있잖아. 그걸 존나 멀리 떨어 트려 놨어
그리고 그 안에 뭐 단절의 이유를 (사이트 편의성 부족, 공돌이들의 전문용어 사용..)이런식으로 써두고
그리고 내가 어찌 어찌 해서 이걸 이렇게 붙이 겠다 이런거는 아담이랑 신 주변에 있는 인부-_-들이 개네들을 트럭으로 옮겨 주고
(솔루션 제시;) 뭐 이런식으로 /.
1910년대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패러디 미술작품들에 다 있던 그림 들이야
그랬더니 제안서 졸라 잘따지더라, 재밌거든
근데 사실 남들은 되게 힘들어하고 어려워 하는 제안서 업무-_-였는데
나는 그 과정이 되게 즐거웠어
뭐 일단 하던것도 전시고 이것도 전시니까 성격은 달라도 크게 '구성'한다는 팩트는 비슷했고
내가 따오기만 한다면 진짜 내가 꿈꾸던게 현실이 되던 세계거든
물론 남의 돈으로 예술을 하면 안되기는 해-_-, 맞을 수도 있어..
암튼 난 진짜 그 때 까지 내가 미술과 영상을 공부 했던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몰랐어
내가 배운걸 자조했던 미술이 거기서 날 도와주더라
뭐 그거 이외에도
내가 23~26세 떄 열심히 본 미술책들은 지금도 내가 어디선가 길을 잃을거 같을 때, 뭔가 방향을 잃을거 같을 때 도움을 주고 있엉
음-_-..
내가 지스타라고 게임전시회를 했거든-_-
근데 원래 지스타 로고가 되게 검은하늘에 은빛에 가까운 파란색이었어
근데 당시 이슈가 셧다운제여서, 나는 그 검은 하늘에 은빛이 외로운 셧다운당한 인생을 상징할거 같다 생각이 들어서
막 디자이너랑 필 받아서 꽃이 피어나고 뭐 따듯한 느낌의 스타;를 만들었어
진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김환기의 어디서무엇이되어 다시 만나랴 같은 그림에 떠있는 별 처럼
누군가를 비춰주고, 어렴풋하게나마 방향을 말해주고 외로움을 위로해 주고 관계를 형성해 주고 그러는 별
암튼 피티하는데 게임업계 사람이 정말 저 디자인 아이디어 누가 내줬냐고 열심히 일해도 욕만 먹는 순기능도 많은 게임을
만드는 자부심을 가지려는 우리 맘을 대변해 준거 같아서 고맙다더라
아 물론 그 그림으로 지스타를 하진 않았어 공무원들이-_- (그냥 형태 그대로 색깔만 썻어;)
그렇게 하다보니, 뭐, 어쩌다가 스카웃;도 받고 이직하니까 저런일만 시키네
암튼.. 뭐 내인생이 항상 성공적이거나 그러진 않어
더러운 사장한테 제안서 서류던진거에 인중 찍혀서 찢어진적도 있고-_-
영업전화하면서 진짜 도저히 못하겠다 생각에 전화기 뿌시고 그냥 갈까 싶던적도 있고
진짜 나는 100% 만족하게 제안했는데 100% 내가 잘못 생각해서 떨어져서 난 겨우 이정도인가 하는
자괴감에 소주 한잔 마시며 멀리서 번쩍이는 행사장을 바라본 적 있고
뭐.. 많은 이야기들 있지만 회사생활 5년만에 지금 겨우 4천 넘게 받어,
그래도 시작이 월 100;이었니까 1200정도로 시작해서, 몇달치 못받았으니 900정도 되나.
그 뒤 1800. 2200, 2800, 3200,. 4200이니 형 나름 성공했지?
여기 있는 횽들도 나 비웃지 말고 축하해줘 우리업계에서 나 정도면 진짜 고연봉자야 ㅜㅜ
에고 야근하자
암튼, 내가 만약 대학원에 갔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달라졌겠지만
중요한건 나는 시작을 업계에서 했거든
그래서 아직은 어렸을 때 깨지고 밟히면서 사는법을 익혔어 (배운건 아냐)
거기서 내 재능이 엉겁결에 나왔고
아마 얼치기 예술가였던 내가 지금의 영업마인드 강한 전시기획자가 되는건 대학원 졸업이후에는 어려웠을꺼야
형 작년부터 00대 대학원 다시 나가거든
거기선 제자한테 자기 작품 강매 넘기는 교수도 나한테는 별말 못한다.
순수하게 학계 인력만 100% 채우면 자기가 데리고 있는 애들이 만족도가 떨어지거든 실무자도 좀 있어야지 야간대학원 느낌나지
나한테 작품 강매 넘기면 전부 녹취해서 졸업장 받고 경찰에 신고해 버릴꺼야, 졸업장 안주면 비리로 신고해 버릴꺼고
나 사기 당할뻔 한적도 있어서 경찰서에서 드잡이도 꽤 했고.
뒷돈 요구하는 공무원 한테 녹취한다고 말해보시라고 해서 그 뒤에 거래 끊긴적도 있다-_-; 씨바 뭐 안쫄아 쫄지마 씨바
그 딴 이상한 권위에 기대사는 교수새끼 따위 안 무서워
결국 좀 돌아왔지만 그래도 전시는 계속 하고 있으니까
예전에 꿈꾸던게 쫌 희미해 져가기는 하지만, 지금도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무언가를 알아가는걸 보면 기쁘고 즐거워
그게 고조선 시대 유물이건 모터쇼에서 나온 새끈한 외제차건, 미학에서 쾌 라는건 주관적이잖아?
이게 내 쾌야, 내 인생이고
누구나 인생의 경로는 다르니까, 뭐 내가 대학원 가라 말라 말은 못해, 옳은 선택도 없고, 틀린 선택도 없어..
그냥 좋은 Follow Up만 있을 뿐
근데, 어려서 할 수 있는게, 어려서 하는게 더 좋은게 있엉, 직장 신입생활, 군대 이등병, 배낭여행, 클럽 원나잇, 순수하게 예술에
취해서 누군가와 밤새 이야기하고 음악들으며 영화 같이 보며 마약 취한듯 행복해 하는거
안녕 꽤 오래전에 내가 댓글달아줬던 밑에 여전히 찌질 대는 도자기 굽는다는 청년
잘 살게 어떤 선택을 하던
내가 기괴하게 뺑글뺄글 돌면서도 그랬던거 처럼 당신도 어떤식으로든 이겨내서 멋진 30대가 되길 바라네
난 당신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라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