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년이 있었다.
근본이 나쁜 년이었는지
아니면 살다보니 나쁜 년이 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내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나쁜 년이 있었다.
그 날.
눈 앞의 스끼다시를 보며 건넸던 농담이 기억난다.
"난 마늘쫑을 먹을 때마다 왠지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아. 이름에 '쫑'이 들어가서"
난 농담을 던졌는데, 나쁜 년은 비수를 꽂았다.
"며칠 전에 선을 봤는데 ......"
야, 재미없는 쫑 개그 좀 쳤다고, 쫑 내자는 거냐.
이런 씨발.
나쁜 년은 '너무 철이 없는' 나를 버리고
좋은 조건의 남자를 선택했다.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죽을 것 같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반드시 거부해야 하는 것은 딱 그만큼 간절하기 마련.
더 이상 좋아해서는 안되는 사람은 그래서 언제나 딱 그만큼 간절하기에
아무리 에이스에서 주무셔도 소용이 없었던 불면의 밤들이 생겼다.
담배 같은 년.
17과 19사이 같은 년.
멍멍이 잠지 같은 년.
슬렘가 초딩처럼 욕을 해도
사랑은 변했고
사람은 떠났다.
사랑은 변한다.
사람 좋아지는데 이유 없듯
사람 싫어지는데도 이유는 없었다.
이별의 이유는
삐져나온 콧털 때문일 수도 있고,
웃기게 그려진 눈썹 때문일 수도 있으며,
새댁이 끓인 콩나물국처럼 닝닝한 유머감각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는
남자가 가격할인 중인 치약을 사는 모습에 실망해서 남자를 떠난다.
보기드믄 씨발년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실연했는데 억지로 기운 내려 애쓰는 것은
미처 익지도 않아 시퍼런 바나나를 레인지에 넣어 노랗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랬다.
그래서 난 그냥
마늘쫑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이름이 바나나가 뭐야 바나나가.
"자네 이름이 뭔가?"
"김 농장직송 무농약 구아바입니다."
이런 거랑 비슷하잖아.
그러고보니
자두랑 양파는 왜 음반을 안 내나.
아아 몰라몰라
죄다 바나나 같은 년들 뿐이다.
아무튼
'너무 철이 없다'는 이유 같이 않은 이유로 차이고 나니
어떻게든 철이 들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난 잘 몰랐는데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임오군란 이후 출생자 중 가장 철 안든 새끼'였다.
살면서 "와! 나 존나 멋있다!"라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우와! 너 존나 멋있다!"라고 했을리 없겠다.
그냥 나는 "멋 없게 살지는 말아야지" 정도로 살아왔는데
그 대척점에 '철'이 있었던 것 같다.
설마 그러겠어
걔가 나한테 그러지는 않겠지
기다려보자 뭔가 사정이 있겠지
이런 마음들을 모두 접고
계산하고 분석하고 재고 밀고 당기고
그렇게 살아볼까 잠시 생각해봤다.
멋 없다.
멋대가리 조또 없다.
그냥 스스로 지옥문 열고 들어간 것 같다.
어쩌다가 철과 멋은 반대말이 되었을까.
뚜렷한 정의도 없는 '철들기'에 신경쓰면서
멋대가리 조또 없이 살기보다는
그냥 살던대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
그러니까 결국 삶을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결국 철이 드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 같이 잘 살고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며
멀어지기에 간절했던 그 나쁜 년은
멀리 있기에 좀 가까이 있기를 바라게 됐던
비유하자면 그냥 리모콘 같은
그런 일반적인 년이 되었다.
경축 탈 나쁜년.
사람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답 없는 아픔'을 겪게 되고
그리고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 쿨한 척 굴거나
아플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전력투구를 하거나
선택을 해야할 때가 온다.
정답은 없음.
다만, 모든 걸 던지지 않아 본 사람은
어른스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서적으로 어린애 일 것이고,
솔직하게 자기를 감추지 않고 내던지는 사람을
사람들은 분명 철 없다고 하겠지만
스스로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행복을 잡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생일선물에는 고마워하면서도
태어난 자신의 삶 자체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
바퀴벌레처럼 2억5천만년 동안
조금의 진화도 없이 오로지 존재만 하는 사람들.
그런 멋대가리 조또 없는 인생을 피해갈 수 있기에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마음껏 철 없이 방황하는 것을 응원한다.
원초적인 행복에는
그만큼의 고통과 아픔이 수반되는 게 당연하겠지.
공짜는 없다.
아 씨바, 난 공짜 좋아하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책임질 사람들이 생기니
멋 없지 않게 살기가 점점 쉽지 않다.
비비고 삐대고 억지로 웃는 일들이 생기며
멋을 잃고,
그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며 산다.
그러니 멋있게 살 수 있을 때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을 때
그렇게 살아본다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오늘 이 회사로 이직한 지 딱 10년이 됐다.
어제 새벽까지 업체와 술을 먹으며
"메추리알은 왠지 행실 나쁜 암탉이 동네 바둑이랑 바람나서 낳은 달걀 같지 않나요?""
여전히 나쁜 년에게 차이던 날처럼 개드립을 날렸고
엉기적거리며 출근해서
몽롱한 상태로 10년 근속 표창을 받았다.
표창장이 열심히 살았다는 인증 문서 같아서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잠시 멍해졌다.
무표정에 들어와 나왔에 적힌 누군가의 힘들어하는 글을 읽었고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었으며
동병상련은 동네 병신 쌍년의 줄임말이라고 낄낄 거렸던 기억이 나면서
나쁜 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고
이렇게 짬뽕 되어 똥글이 적혔다.
만물의 조화는 참으로 놀라워.
덕분에 글을 쓰며
오랜만에 내 마음에서 걸어보았다.
내 마음은 산 속에 난 오솔길과 같아서
자주 왕래하지 않으면 어느새 잡초들이 길을 덮어
그 곳에 길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 같다.
잡초가 쑥쑥 올라 온 오솔길에서
스스로를 응원해본다.
여전히 주변에는 나쁜 년 같은 존재 투성이지만,
중년의 월급쟁이.
부디 힘 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