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이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 같은
캠퍼스의 낭만을 그린 청춘물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여서
아마 그래서 그랬겠지.
1961년생 홍학표나 1969년생 김찬우 같은 청춘스타들을 보며
아 나도 대학 가면 최진실 같은 여자친구와 청춘 드라마를 찍겠구나, 하는
귀여운 생각을 했었다.
막상 대학을 가보니 청춘 드라마는 개뿔,
막장 아침 드라마만도 못한 현실이었지만.
멋있게 보이고 싶어 담배를 배웠지만
정작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멋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것은
'뭘 잘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용서를 빌어야 할 상대'가 생긴다는 것.
그런 것들을 알고 난 다음, 난 세상이 조금 시시해졌던 것 같다.
좀 더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봐도 될 나이였는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을 맹신하듯
"인생 별 거 없다."는 말이 진리인 듯 살았지.
하나를 보고 열을 알면
그게 무당눈깔이지 보통 사람은 아닐텐데.
늘 섹파 구하는 인터넷 게시판 글처럼 여자친구를 구했기에
'식용색소 적색 2호' 같은 사람들만 만났다.
맛은 있지만 몸에 안 좋은.
그래서 늘
"위아래 속옷이 짝짝이어서 오늘은 안돼!"
"야, 그건 너무하잖아. 입고 할 것도 아닌데!"
이런 대화들만 주고 받았지.
아,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는 그 년이 좀 너무하긴 했다.
세상이 멸망한다고 했던 그 때.
이씨빌쎄기.
내가 발음 그대로를 적어놓고 낄낄거리던 그 때
네가 나에게 왔다.
난 여전히
싸움 못 하는데 욕만 잘 하는 놈처럼
가진 것 없는데 있는 척, 아는 것 없는데 아는 척.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그런 나에게
넌 그냥 아무 말 없이.
멋있게, 섹시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그리고,
서른은 심난함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에서 숫자는 글자보다 중요하니까.
게다가 남의 나이도 아닌
내 나이 앞자리 숫자 바뀌는 일인데
숫자 따위라고 무시할 수는 없었지.
그 나이까지 독립적인 주거공간도 없었고,
결혼이라는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해 보였으니까.
예단비는 신혼집 매매가의 10%고, 절반은 돌려줘야 하고.
책에는 적혀있지 않은 암묵적인 합의까지 파악해야 하는 나이.
그 막막했던 서른.
전국노래자랑 실로폰 소리 듣고 일어나
짜파게티 하나 끓여먹는 일상이 사치가 되었던 그 때.
난 청소년 시절의 게스 청바지처럼
사랑이 사치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별의 이유가
설렘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익숙함 때문이었다면
풍선을 불어놓고 서서히 쪼그라져가는 걸 보는 것보다
바늘로 펑 터뜨리는 게 깔끔하다고 변명이라도 했을텐데.
다 잊었지만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는 너의 시간.
너를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치통의 백배 정도 아팠던 지독한 시간이 흘러
다시 내 나이 앞자리 숫자를 바꿀 시간이 왔다.
그 때만큼 마음이 요란한 일들은 생기지 않고,
난 여전히
"자동차 매연이 만연한 도시에 살려면 폐에 면역력 부여가 필요하다"는 변명을 해가며
담배를 피운다.
유난히 눈이 많고 추웠던 그 때처럼
소복소복 쌓인 눈과 칼바람이 마음의 근육을 뻐근하게 만들더니
점심을 먹고 뿜어내는 담배 연기 속에
사랑이나 추억 같은 몇 개의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황홀한 너의 모습이 그 시간에 보인다.
인생이란 자세히 들여다보면 흠집 투성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게 보이는
백미터 미녀 같은 녀석이로고.
네가 없었다면
난 그 시절을 무엇으로 그리워 했을까.
초고속모뎀, Y2K, 이런 것들이 아닌,
그 시절에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더불어
그 때, 널 좋아했던 내가 참 좋다.
올해는 그 때처럼 억지로 울음 삼키는 일보다
환하게 웃을 일이 조금 더 많기를.
그렇게 바라며
손발이 오글오글하게
나이를 한 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