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인생은 뭐든 겪어봐야 할 일이다.
어장관리를 당하는 후배에게 매번 이런 말을 했다.
왜 굳이 너는 거지 똥구녕에서 콩나물까지 빼먹을 년만 만나냐.
그 비용으로 차라리 안마;를 가. 똥꼬에 낀 콩나물까지 황홀하다 이 새끼야.
거기 가면 똥꼬를 응? 이렇게 저렇게 응? 혀로 응?
그랬다.
2년 전까지는.
아내가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것이 2년 전이다.
빠가;와 사족보행 생명체는 내 거주지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 라는 나의 강한 주장은
새벽 퇴근을 밥 먹듯이,까지는 아니고 면 먹듯이 하는 남편을 둔 아내가
춤바람이 아닌 반려동물로 그 공허함을 달래겠다는 논리에 무너졌다.
그래. 주말마다 양평 인근에서 동물같은 놈 만나 붕어찜; 먹으러 다니는 것보다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고양이라니.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라니.
주인도 못 알아보고, 요물;이라는 얘기까지 있는 동물을 왜 굳이!
알아본다.
퇴근하면 쪼르르 달려나와 신발장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반긴다.
그리고, 요물 맞다
사람을 들었다놨다 들었다놨다 한다.
귀여워 죽겠다.
나, 어린이와 동물을 사랑하던 마이클 잭슨이라도 된 것 같다.
애묘자격증이 있으면 1급 받을 것 같다.
녀석은 아내가 집에 데려오자마자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앉으면 무릎에, 누우면 가슴 위로 폴짝 뛰어올라 찰싹 붙는다.
조금 떨어뜨려 놓아도 어느새 다가와 서럽게 울어대며 달라 붙는다
돈복도 아니고, 여복도 아니고, 내가 묘복;이 있을지는 몰랐네 몰랐네 몰랐네
결국 2년 내내 녀석의 고정 잠자리는 내 가슴팍;이 되었다.
조금 유별난 녀석인 것 같기는 하다.
고양이들은 아주 기분이 좋을 때 '꾹꾹이'라는 것을 한다.
엄마 젖을 먹을 때 본능적으로 더 많이 먹기 위해 앞발로 꾹꾹 안마;하듯 눌러대는 행위.
기분이 몹시 좋고 편안할 때만 나오는 행위라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 사이에서는 고양이에게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고들 하던데
이 녀석은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하루에 대여섯번씩 꾹꾹이를 한다.
헤픈 녀석. 이름을 걸레;라고 지을까. 아내가 화내겠지.
문제는 이 녀석이 집에 오면서부터 마른 기침과 재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
처음에는 코감기와 목감기가 참 오래도 간다 싶어서
혹시 지속적인 과로와 술담배로 인한 인체의 경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대학병원으로 가서 전신 스캔을 떴다.
괜히 헬리코박터균 제균하라는 뜬근없는 검진 결과만 나와서
비싼 돈 내고 쓴 약만 한달 내내 먹었네.
이 헬뭐시기 새끼들은 왜 월세도 안내고 내 위장에 막 들어와 사는건데.
고양이 알레르기.
고약하게도 콧물, 코막힘, 재채기, 마른 기침, 두드러기가 동시에 온다.
덕분에 알레르기 치료제 타리온 정을 항시 소유하고 다녀야 하는 약쟁이가 되었지만
지속효과가 썩 좋지 않다.
자다가 오장육부 리모델링 할 듯 격한 마른 기침을 하면서 깨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라
참지 못해 찾아간 한의원에서
원장님은 이게 다 면역력 부족이라며 한약 한 첩과 함께
차가운 음료와 성행위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
사회적 고자라니. 나이 마흔에 고자라니.
한약을 먹으니 한달 정도 기침이 가라 앉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약빨이 끝나면 다시 기침은 찾아 온다.
이거이거 폐병환자 코스프레가 따로 없다.
내가 무명작가라면 원고지 위에 각혈을 토해내며 이 땅의 예술이라도 논하겠는데
난 그냥 월급쟁이다. 월급만 논한다.
오늘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 전문 한의원에서 3개월짜리 진료 쿠폰; 결제를 하고 돌아오며
어장관리를 당하는 후배가 떠올랐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그 자식은 뭐라고 할까.
보나마나 놀림의 도가니탕이 구수하게 우려나올 것이다.
차라리 키티 인형을 모아요. 그러면 감성적인 변태 취급이라도 받지.
아마 이러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가서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이성은 바닥인데 감성은 파도를 친다.
이건 알레르기라는 이름의 고행이자 수양이다, 라는 원효대사님의 심정.
거 참, 내가 고양이빠가 되다니.
뭐든 겪어보지 않고는
정말 모를 일이다.
고양이 사진 좀 올려주시면 안되나요? 하악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