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자랑 결혼하지 못한다면 시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시인보다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익숙하지도 않은 양복을 입고 장차 장인어른이 될 분의 집으로 찾아가서 셋째따님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대학도 졸업 안 한 셋째딸에게 청혼이 들어왔으니 보통일은 아니었겠지.
딸 넷을 키우는 동안 별 희한한 질문이나 어이없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장인어른도 이보다 더 어이없는 경우를 겪어보진 못하셨을 거라 생각한다-_-;; 다행히 내가 있는 동안엔 밥상을 엎어버린다던가 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란 놈이 어떤 놈인지, 첫째 딸도 제치고 셋째를 먼저 시집보내도 될 만한지 첫째 딸 의견을 들어보셨댄다. 헌데 큰 처형은 뭘 잘못 먹었는지는 몰라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나를 이미 동생의 남편감으로 찍어놓은 지 오래였댄다.
사실 나한테 별 관심도 없던 셋째 동생더러 괜찮은 남편 감이니 너 좋다고 하면 빨랑 붙잡으라고 닦달을 하는 통에 큰언니 말이면 무조건 따르던 셋째;는 얼떨결에 나와 애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결국, 장인어른은 저 사람이 비록 보기엔 저래도-_-;; 제법 우량주라는 첫째딸의 설득에 넘어가 결혼을 승낙하셨다.
내가 장인어른 입장이었다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테다. 갓 대학을 졸업한 빈털터리 총각에게 제일 살갑게 굴던 셋째딸을 내 주시는건 큰 모험일 수 밖에 없었을 터.
어쨌든 어린 딸들을 믿으셨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일 관계로 서울에 가서 처가에 묵을 일이 있으면 장인어른께서는 다른 딸들의 애인들을 꼭 집으로 부르신다. 별 건 없지만 먼저 결혼했단 이유로 수험생이 면접관으로 승진 해 버렸달까.
"사람은 좋아보이네요."
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래봐야 다분히 외교적일 수 밖에 없을 터.
"사실 자기들이 좋다는데 저희 결정이 큰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막아서 되는 일은 아니고.허허;"
내가 결혼 허락을 구하러 갔을 때도 같은 생각을 하셨겠지.
얼마전, 일 때문에 서울에 들렀다가 처갓집에 들렀다 돌아갈 날 아침이었다. 뭔가 잊었다는 듯 득달같이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만 화선지 위에 달필로 才勝薄德 이라고 네 자를 적어주신다. 사위 일이 잘 되는 걸 기뻐하시지만, 한편으로는 걱정해주시는 셈이다.
재산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처가를 부러워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좋은 처가를 뒀다면 가족이 하나 더 있는거나 마찬가지인데.
일하고 관계없이 처가에 놀러가게 될 때면, 장인어른과 으슥한 보신탕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큰 처형과는 팔짱을 끼고 걸어다니기도 하고 둘째 처형은 아이들과 남편을 데리고 와서 꼭 하루는 같이 자며 밤 늦도록 수다를 떨고 아직 결혼 안 한 막내 처제는 자기랑 같이 일하는 여자 모델들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낄낄댄다;
마누라랑 가끔 다퉜을 때, 마누라는 바꿔도 처가는 바꾸기 싫단 생각이 들어서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하곤 한다.
"저 셋째 딸이랑 못 살겠네요. 다른 딸로 바꿔줘요. 셋째 대신에 저랑 같이 사실 분 손~"
....다른 딸들이 손 들어줄 거란 착각을 하고 산다-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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