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여자친구가 생겼다.

 

소개팅으로 만났고 다른 대학의 동갑내기.

 

엉겁결에 나간 소개팅이었는데 애가 착하고 예의도 있고

 

말도 잘 통하고 어쨌든 삘이 꽂혀서 사귀게 됐었다.

 

근데 다른 학교라서 그런지 예전에 CC일때와는 달리;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서로 시험기간이다 뭐다 하면

 

그냥 주말에 한번씩 보고 전화하고

 

뭐랄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게 참 느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학교가 먼저 중간고사가 끝나서

 

나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게임방도 가면서 놀았다.

 

게임방 가면 열랩하던 와우 42짜리 도적좀 끄적거리다가;; (시작한지 얼마 안됐음)

 

스타를 하다 나오곤 했다.

 

어제.. 내 여자친구도 시험이 끝났다.

 

내 친구들도 소개시켜 줄겸 우리학교로 와서 술이나 한잔 하기로 약속을 정했다.

 

저녁에 여자친구가 왔고 내 친구 둘과 나, 여자친구

 

이렇게 넷이서 맥주한잔 하러 학교 앞 술집에 갔다.

 

서로 인사하고 술 먹고 하던 찰나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간다고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다음엔 어디가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뭐 남자들 끼리야 게임방 가고 당구도 치면서 놀건 많은데

 

여자가 한명 끼니까 거기다가 처음본 서먹한 자리인지라

 

마땅히 뭐할지 생각이 안나는 거였다.

 

눈치없는 내 친구들은 우리는 이만 갈게 이런말 따윈 절대 하지 않는다 -_-

 

그러다가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여자친구가 자리로 돌아왔는데

 

눈치없는 친구놈이 겜방이나 갈까 하면서 운을 띄우는 것이었다.

 

'가서 할것도 없어. 술이나 한잔 더 하자~'

 

내가 수습에 나섰는데

 

이 넘이 '왜 임마 너 와우도 하고 스타도 해야하잖아'

 

하고 또 눈치없이 구는 거였다.

 

오.. 하지만 눈치빠른 내 여자친구는 고맙게도

 

'나 신경쓰지 말구 아무데나 가도 되'

 

하고 말해주는 거였다. ToT 자기도 가면 할거 많데나;;

 

나는 레벨업 얼마 남지 않은 내 캐릭을 떠올리며;

 

못이기는 척 겜방으로 가게되었다.

 

내 친구들도 나랑 같이 와우를 하는데 우리셋은 초보라서 아직 40중후반 랩에서

 

찌질찌질;; 천골마라도 보이면 우와- 하며 찌질대는 -_-;;

 

넷이 자리를 잡고 않아서 같이 게임하기 전에 다들

 

지 계정 들여다 보고 인터넷도 좀 하면서 10분 정도가 흘렀다.

 

여친은 뭐하나 봤는데 많이 낯익은 화면이다 -_-

 

어 와우네? ;

 

내 여친은 만랩 캐릭이 세개였다. 서버는 달랐고;

 

우리가 찌질대며 바라보던 천골마에.. 에픽들을 두르고 있었다.

 

'나 한창 레이드 하다가 그만뒀어. 이젠 거의 접었지'

 

나랑 내 친구들은 어안이 벙벙.. 뒤에 붙어서 구경도 하고;;

 

여친은 수줍은 듯;; 별거 없다고 지금은 더 잘나가는 애들 많다고 그러고;;

 

참 이상한 시츄에이션이었다;

 

내가 아직 모르는 점이 많구나 싶었다.

 

난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여자애들이랑 맛집찾아 다니는;;

 

평범한 여대생인줄 알았는데;;

 

내 친구가 물었다. '그럼 스타는 할줄 알아요?'

 

'아..네? 조금요;;'

 

여친이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나는 왠지 그녀의 모습에서 포스가 느껴졌다.

 

이거.. 나보다 잘하면 어쩌지 하는;;

 

오늘 학교가서 내 친구들이랑 이야기 한거지만

 

다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여튼 그렇게 되서 친구 둘vs 나랑 여친 이렇게 2:2를 하게 됐는데.

 

'무슨종족해?'

 

물으니깐

 

'아무거나' 라고 대답한다.

 

속으로 휴; 유즈맵이나 끄적거리고 진짜 할줄만 알겠거니 했다.

 

난 테란을 고르고 여친은 보더니 프로토스를 고른다.

 

게임을 하는데 옆에서 단축키도 쓰고 부대지정도 하고 할거 다하더라;

 

빌드도 다 알고 알아서 막고 알아서 치고 하더니

 

결국 나는 방어만 하다가 끝났다.

 

이 묘한 기분;;;;;

 

'와 좋겠다. 여자친구가 못하는게 없네~'

 

왠지 친구들 말에 으쓱해지긴 했는데

 

다음말이 더 가관이다.

 

' 여자친구, 당구도 잘치는거 아냐? '

 

속으로 설마 설마 했는데

 

' 아.. 별로 120정도 쳐요 '

 

뭐 막차시간이 다가와서 당구치러 가긴 좀 뭐하고 ;;

 

친구들은 보내고 여친을 바래다 주러 둘이 지하철 역으로 걸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놀라워 하면

 

얘 눈에는 내가 얼마나 찌질해 보일까 해서;;

 

다른이야기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궁금해 지길래 집에와서 전화로 아까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냥 이것저것 다 빨리 배워서 그래 이젠 게임같은건 잘 안해'

 

'아 그렇구나. 다른거 뭐 하던겜은 없어?'

 

'스포랑 프리스타일도 조금 했었는데 이제는 진짜 심심해서 할거 없을때만 해'

 

'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만 연발하면서 얘는 대체 안해본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심도있는 대화가 필요한것 같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얘가 안해본걸 찾아서 내가 가르쳐 줘야지 하는

 

이건 뭐 경쟁심리도 아닌 것이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지금도 글 쓰면서

 

얘도 설마 무표정인인거 아냐? 하는 긴장감이 엄습한다.

 

아무튼 무서운 여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