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들은 이야기
할아버지가 일본군에 끌려가게 됨.
할아버지는 동남아, 정확히는 버마로 끌려가심
조센징이라고 엄청난 구타에 시달렸음.
거기에 할아버지는 경기고보 - 죠치대학 진학한 엘리트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있던 대대에서 대학물 먹은자가 장교들 빼면 자기 하나뿐이었다고 함
문맹이 많았던 그 부대에서 작전문을 읽고 장교들에게 대우 받는 할아버지는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더 두들겨 맞음
근데 그렇게 두들겨 패고도 집에다가 편지써달라고 하는 일본놈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쉬는시간도 거의 없었는데
차라리 편지써주다 보면 때리지 않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을 정도 였다고
편지를 필사해 주다보면 옆에서 말을 하던 악마같던 선임병들도
어머니, 아버지, 아내, 자기 자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는 건강하니 괜찮다고 오열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고.
제일 기억나던 선임이 하나 있었는데
일본의 어떤 산골중의 산골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가 군대 입대하기 전 큰 가장 높은 빌딩이 2층짜리 면사무소 였다고
당시 일본군 문맹들은 교육을 못받아서 글자를 못쓴다기 보다는 (의무교육제도 있었다)
다들 가난해서 의무교육인 국민학교;만 겨우 마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면 평시 생활에서 글을 쓸 일이 거의 없어지니, 어떻게 읽기는 해도
뭘 써야 할지는 모른다. 한자가 보면 뭔지는 아는데 막상 쓰라면 힘들다 이런 준 문맹정도 였는데
이 산골청년은 이 의무교육마저 못받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에서 와서 -_-
히라가나도 모르고 아라비아 숫자도 몰랐다고 한다.
원래 이정도면 병력으로 쓰면 안되는데 (작전이 안되니) 근데도 병력이 없어서 그냥 대강 보낸게 일본의 전쟁막판 개막장 상황
전쟁에 끌려오기전에 임신한 아내를 두고 왔는데
그 지역이 폭격을 당했다고 한다
자기 가족은 어떻게 다 살았는데 주변에 그나마 글자를 알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이름 지어줄 사람도 없어서 유일하게 자기가 알던 한자인
바를 正 자녀자 子라고 지어줬다고 한다-_-
근데 막상 편지를 적어도, 그 마을이 전체가 문맹이라며-_-
써주면 누가 읽어주냐니까;
이 선임 왈 주소만 적으면 편지는 동네 우편배달부가 와서 전해주긴 할꺼다.
그래서 그동안은 서로서로 사진만; 보내거나
그 우편배달부 한테 간청해서 편지를 읽어주거나 써주거나 했는데 ( 저 정자;;는 이렇게 지은 이름이다)
그 동네의 상황이 더 안좋아 졌다. 그 유일하게 글을 읽을 수 있는 그 우편배달부 조차-_-도 징집되었다..
우체국에는 아직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이 모든 편지를 다 읽어줄수는 없고
결정적으로 산을 두개 넘어가야 한다.
결국 그 동네 우편배달방식은 이랬다고 한다.
장날;에 우체국에 가서 동네에 남은 아줌마들이 그 동네에 배당된 편지를 들고 온다.
마을사람들 전체가 모여서 연-_-다
그럼 대부분 문맹이라, 사진들만 있는데, 그 사진을보고 어느집 사진인지를 확인한다.
아직 자기 자식이 멀쩡한걸 확인하고 운다-_-
그리고 사진과 함께 온 편지가 있는 경우
다시 산을 두개 넘어서 면에 있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_-;;
병사의 사망을 알리는 종이는, 누르스름한 갱지에 서류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서류를 읽는 것은 사망통보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마을 노인들, 공무원들은 이런 시골아주머니들의 부탁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자식의 사망소식을 들은 어머니들이 실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리가 없지...
....
자기 잘못이 아닌데 글을 읽을 줄 안다고 남에게 최악의 소식을 전하게되니 그것도 싫고
시체는 찾을 수 있냐, 왜 죽은거냐, 그럼 다른 아들들은 괜찮은거냐고 실성해서 달려드는데
다만 편지를 읽었을 뿐인 자기들이 잘못한거 처럼 되어버리는게 싫어서 그랬다고
아무튼, 이 선임의 동생은 그렇게 누르스름한 갱지에 사망통지가 전해왔고
이 사망통지를 받은 집은 말그대로 초상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선임이 할아버지에게 부탁해 자기는 멀쩡하다는 사진과 함께 보낸 편지도 같은날 도착했고
그 가족은 이렇게 하기로 했단다.
임신한 둘째 며느리도 그냥 제사취수(형제가 죽으면 그 아내는 그 집안에서 첩으로 거둔다)..로 해서, 이 선임의 첩이 되는걸로 한다.
자식을 낳으면 당연히 그 집안에서 함께 기르는걸로 한다.
자식은 서얼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한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건, 그 선임이 멀쩡하게 돌아오는것이다.
그러려면 얘도 먼 곳에서 고생하고 있고 슬프겠지만 동생은 죽었고, 너가 책임질 가족이 이제 2(아내+딸)이 아니라 4명(제수,조카 추가)이나 되니
반드시 살아오라고, 비겁하게 귀축영미-_-의 포로가 되어서라도 목숨은 부지하라고 해야 겠다
혹시 동생이 죽고 딸린 가족이 4명이나 되는걸 알게되면 군대에서 보내줄 수도 있지않을까 헛된 기대도 해보고..
어차피 우리는 글을 못쓰니, 이 사망통지서를 그대로 선임에게 보내자라고 했다고.
지금 한국군도 비슷하지만
편지가 도착하면 부대가 웅성웅성대는건 그 때도 비슷했다고 한다
문맹자들은 수십명-_-이 계급순-_-으로 일렬로 우르르 서서 할아버지입만 보고 있었는데
모두 건강하다, 얼마전 니 아이를 낳았다 이런 내용을 읽어주고 사진을 보여주면,
악마같던 선임들도 울면서 고맙다고 뭐 간식을 주기도 했고,
당분간은 안때리고 잘해줬다고 한다.
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원인은 뭐다 이러면 천사표 같던 선임들도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병명은 뭔데, 왜!! 왜!... 왜... 하면서 이 빠가야로야 똑바로 읽어 죽는다
이러며 애먼 편지지에 화를 내고 이랬다고
암튼 그 문제의 선임의 편지였다
할아버지가 그 선임의 편지를 읽을 때는 느낌이 정말 안좋았다고
누르스름한 갱지
제목부터 사망통보서
사망자는 00의 일등병 ---
사망지 태평양의 어떤 섬에서
사망원인이나, 이런건 없고, 그냥 유감이다, 천황폐하의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이 통지서를 가지고 관공서에 가면 당분간
세금을 면제해 준다 등등의 짧은 소리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밑에 아마도 어머니 가 부탁했을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안된다,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한다" 였다고
암튼 그 선임은 알았다고 하고는 울먹이며 조용히 자리를 떠났고
이 선임이 자면서 동생이름을 부르며 흐느꼈는데
짬밥이 안되면 가족이 죽었다는 이유로 훌쩍이는게 황군의 자세-_-답지 않다고 구타가 벌어졌다고 한다
때리던 사람도, 그날 편지로 자기 부모님이 암으로 죽었다고 통보를 받은 사람이었다고..
할아버지는 슬픈사람들끼리 서로 두들겨 패고 하는게 너무 슬펐다고 한다.
몇일 뒤 이 산골 선임과 같이 경계근무가 있었는데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제 그 제수가 아이 낳을 떄가 다 되었을 텐데
자기동네는 다 문맹이라, 이름을 지어줄 사람이 없으니 니가 지어줘라.
그래서, 이 작명요청-_-을 받은 할아버지는 고민하다가
이 선임에게 마을이름과, 뒷산 이름, 그리고 그 동네에서 아름다웠다는 제비꽃 이름등을 조합해서
멋드러진 이름을 하나 지어줬다 (할아버지는 당연히 일본어를 잘하셨다)
일본인들이 이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획과, 발음과 각운인데
획도 좋은 획으로 뽑았고, 발음도 좋았고 각운이라고 성과 이름이 발음이 이쁘게 떨어지는건데 이것도 잘 해줬다고
그래서 답장을 쓰면서, 혹시나 그나마 남은 글자 읽을 줄 아는 인간-_-들마저 없어질 것을 대비해서
그 글자의 뜻에 해당하는 글자를 열심히 그림으로 그렸다고 했다.
당시 이렇게 우편을 보내던 선박들도 침몰되며 연락이 거의 두절되어 가던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똑같이 두 부를 작성했고
한부는 자기가 들고 돌아가던가 하겠다고 했다.
자긴 이편지랑 반드시 살아 돌아간다고.. 표정이 비장해보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그 편지를 적어준 이후 얼마 뒤 탈영을 하셨다.
패색이 짙어지던 일본군은 여기저기서 깨지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있던 버마 전선에선 주로 영국군과 싸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영국군의 용병들인 인도계, 구르카, 용병들이 많았는데
영국군은 유럽에서 전쟁 때문에 거의 정신을 못차리다가
유럽에서 전쟁을 끝내고 많은 병력들을 다시 자기 식민지들을 지키러 보냈다고 한다
그 중 악명높은 시크,구르카 연대들이 오합지졸 일본군을 급습했고
제대로된 보급도 못받던 일본군들은 여기저기서 패주하게 된다
결국 할아버지가 있던 부대도 공격을 받아 궤멸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분대에 속한 몇몇과 방향도 제대로 모르고 후퇴하게 되었다
몇일 굶으며 하루에 정글 수십리를 걸으며 후퇴하는 와중에도 일본군 특유의 악마같은 구타와 갈굼은 계속되어
걷다가 배고파서 눈에보이는 열매를 몇개 먹었는데
그 열매는 널려있었음에도 건방지게 쫄병이 먼저 먹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두들겨 맞던중에
누군가가 당신네를 사격해서 도망쳤는데
이젠 또 두들겨 맞던 당신을 사지에 내세우고 자기들만 도망가며 조센징 엄호똑바로 해 이러길래
당장은 어떻게 도망쳤는데
도저히 더이상 가만 있으면 안되겠다 해서
그 곳에서 도망치고 나온 뒤 같이 도망다니던 패잔병 4명을 사살했다고 했다.
....
원래는 제일 악질 2명만 죽여야 겠다 했지만
그러면 나머지 2명이 자기를 죽일게 뻔했기 때문에
살려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이미 전투로 사람을 사살한적이 없던건 아니지만
그렇게 그래도 자기 동료를 죽이고 나니 너무 슬프고
죽이고 난 뒤에야 자신은 나침반,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법도 몰랐다는걸 깨달았다고
이 질척한 정글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갈지도 막막하고
어떻게든 자기는 또 살겠다고 시체를 뒤져서 총탄과 먹을걸 챙기는 자신을 보니 너무 비참하고 추해져서
자살을 생각하고
습기찬 정글에서 그마나 양지바른 곳에 앉아있었는데
어디선가 또 자기에게 사격이 왔다고 한다.
그 순간 자살하려는 생각은 싹 사라지고 도저히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이렇게 죽기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노리는 적들에게 열심히 대응했다고 한다.
어떻게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적들이 자기보다 수는 많지만
어쩐지 수류탄이 없어서 총으로만 사격한다는 느낌
그리고 탄약을 아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어차피 죽을거 한번. 도박을 하자 하고 근거리까지 돌진해서 수류탄을 던졌다.
할아버지 판단은 정확했고, 적은 3명이었는데
애네들은 아마 인도(영국)군 패잔병이나 낙오병 이었던듯 했다고..
이들의 군장에서 작전지도를 발견했고.
할아버지는 차라리 영국군이 지배한데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그리고 무작정 그 지도에서 영국군 캠프가 있는 나침반의 서쪽으로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서쪽으로 가는데, 계속 정글이라 하루에 5키로 가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가다가 운좋게 공격받아 버려진 영국군 보급차량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서 혼자서 먹기엔 충분한 식량과 깨끗한 물을 구한게 살아남게 해준 거 같다고 하셨다.
근데 보급차량안에 왠 편지봉투들이 실려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그건 신경안쓰고 지나쳤다가.
한참 뒤에야, 아까 그 그림까지 그리며 보내려 했던 편지가 생각이 났다고 한다.
왜 영국군 보급차량에 일본군 편지가..있었는지는 이유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영국군이 일본군 보급대를 습격해서 편지를 얻었고
군사기밀이 있을까 하고 상부부대 보급품으로 보내다가
다시 일본군에게 공격당해 죽었거나 이런상황이겠지
근데 그 정글-_-을 되돌아 가다니 이건 미친짓이야 하고 고민했다고
근데 왠지 찜찜한 마음에 결국 2일걸려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갔고
그 편지 더미에서 놀랍고도 식상하게도 그 그림그린 편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결국 그 편지는 부치지 못했구나
자기랑 열심히 그림그리며 자기 마을의 뒷산을 설명하고, 그 마을에만 다른색으로 핀다는 제비꽃이 얼마나 이쁜지를
설명하며 웃던 문맹 선임이 생각났고
이 편지를 자기라도 부쳐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겠다고 마음먹고
그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무작정 북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뒤엔 그러다가 또 몇일이 지나 식량이 다 떨어져 죽기 직전에
20가구 정도가 사는 어떤 산골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들은 일본군에게 반감이 있었는지, 자기를 내쫒았다
억지로 들어가려다가 화살을 맞을뻔 했다고 한다-_-;;
그래서 이젠 좀 인간이 사는 동네 같아서 주변을 뒤져보니 다행히 더 큰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 도착하니 영국군들이 있어서 항복하고 무장해제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는 영어 필담으로 자기가 강제징집된 한국인이라는것, 그리고 탈영했다는 것을 밝힘
영어를 하는 포로에 흥미가 생긴 영국군 대위는
우리 동맹국인 한국에 너네 같은 탈주포로 애들로 구성된 부대가 있다고 한다. 조인하겠냐고 하셨고
그게 독립군이라는걸 알게된 할아버지는 바로 ok, 땡스, 하며 가담하게 되셨다.!!!
근데 거기서 독립군 있는 곳까지가 멀기도 하고 해서
교통편이 날 때 까지 영국군에게 사로잡힌 일본포로들을 심문하는 역할을 한달정도 하시다가
자기랑 처지가 비슷한 조선군 포로들 몇몇을 독립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셨고
(일본이 전쟁 지는게 말단 병사가 봐도 뻔히 보이는 판이라, 친일파 악질들도 독립군에 끼여들려고 하셨다고 혀를차셨다)
그렇게 대강 독립군 지원자 15명이 모이자, 영국군 장교가 차편을 알아봐 줘서 독립군 OSS 훈련하는곳에 도착했고
공교롭게도 훈련 시작한 둘째 날이 1945년 8월 15일 이었다
바로 전쟁이 끝나셨다고. 한다.
나는 이게 뻥일줄 알았는데
얼마전 알아본 광복군 OSS교육 훈련일정표를 보니
저 날짜가 진짜 1기가 작전대기중이었고
2기가 딱 훈련시작하던 그 시점이었다.
암튼 그래도 독립군 대우를 해주셔서, 우리 큰아버지, 아버지는 군대면제 받았고, 공무원 공채, 채용에도 도움이 되셨다고
전쟁은 끝나고 할아버지는 멀쩡히 귀국하게 됨
그 뒤는..알다시피..
다시 한국전쟁으로 피난다니셨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으셨고
주머니속 그 편지는 한참 잊고 있으시다가
한일국교 정상화가 된 뒤에 고향특산품인 생선을 일본인들이 환장하며 좋아하던거에 착안
무역을 하려고 하다가
고등학교 동창 중 일본으로 귀국한 친구들에게 어떻게 연락이 닿았고
그 친구가 또 다른 동창 중 무역업을 하던 사람을 소개해줘서 사업을 시작 돈을 꽤 벌었음
그래서 이 일본 동창을 만나러 일본을 사업차 몇차례 가게 되었는데
저 편지가 생각은 났으나, 당시는 한국은 가난하고 일본은 물가비싸서
출장나가서 몇일 여행하고 이러는건 꿈도 못꾸던 상황임.
그렇게 또 수년이 그냥 지나감
자식들도 이제 꽤 컸고, 사업은 이제 일본가서 몇일 돌아댕겨도 여유가 생겼겠다 싶었고
할아버지도 더 늙기전에 그곳을 꼭 가보고 싶다 생각이 드셨다고 함
그래서 이번엔 아예 일정을 길게 잡고 감. 이 때가 1960년대 중반쯤.
그리고 이번에는 저편지에 적힌 주소로 일본에서도 깡촌중의 깡촌이라는 이와테현 어딘가를 찾아감.
문제의 그 역에 도착하는 순간, 웃음이 먼저 나셨다고 함.
그 문맹의 어수룩하던 선임이 열심히 설명하던 깡촌이 거기 펼쳐져 있었다고
편지에 쓰인 글자를 읽어달라고 열심히 넘어야 했던 무지막지하게 큰 산 두개가 눈앞에 들어왔다고 했다
멀다고 택시도 안들어가는 동네라 버스타고 어떻게 해서 한참을 들어갔다고..
마침 계절이 그 제비꽃이 이쁘게 피던 그 시점이었다고하고
주소를 수소문해서 갔더니
사람이 없어서 그냥 서서 기다리는데
우편함에 왠 잡지가 꽂혀 있어서 봤더니
자기가 이름지어준 그 아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이 있더라고..
그래서 아, 이사람 살아 돌아왔구나!!하고 기뻣다고 했다
이때 할아버지는 그 지옥에서 살인까지 저지르며 억지로라도 살아있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기달려서 그 선임을 만났다.
그리고 이 선임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투중에 할아버지 분대랑 이사람 분대랑 흩어지게 되었는데
이 사람 분대는 어떻게 탈출에 성공해 본대로 합류하게 되었다
근데 본대도 답이 없는 상태였고
혼자라 어떻게 살살 빠져나온 할아버지보다 더 딱하게도
이 부대가 도망칠 길은 없었다
일본군 답게 마지막 반자이 돌격(기관총 쏘는 적군한테 천황폐하 반자이;;하며 달려드는 자살공격-_-)을 지시하며
후퇴하면 조준사격한다고 일본도-_-를 휘둘르는 상관을 '처형'하며..
우리가족에서 나까지 죽으면 안된다고 동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일본군 기준으로는 아주 비굴하고 염치없게
부대 전체가 항복했고
'수치스러운' 포로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 군사우편으로 보낸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던걸 보고 ..
자기가 살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 이름으로 붙여줬다고..
그리고 그 떄부터 글자 몰라서 남 도움 받던게 너무 원통했는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제는 문맹이 아니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 결혼할 나이가 다되어가던 그 둘째 딸을 인사시켰다.
그리고 두분은 꾸준히 서로에게 연하장을 보냈고
할아버지는 이듬 해 그 둘째 딸의 결혼식에도 참가하셨다
흠.
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지금 장례식장이고
워낙 연로하시고, 아들이신 큰아버지, 아버지 마저 다들 현직에서 은퇴해서 손님도 많지가 않다
한가한 장례식장에서 나는
할아버지가 해주던 많은 옛날이야기를 생각한다.
난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해주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우리 가족들과 사촌중 할아버지 이야기를 열심히 듣던건 나 뿐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셨다.
내가 재밌다고 책으로도 써보라고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자기 나이대 사람들은 이거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가 많아서
별로 재미없을거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저 시절 연하장들을 모아두셨는데
안타깝게도, 치매가 오신 뒤 방을 정리하면서 이걸 큰집에서 다 버린거 같다.
주소가 남아있다면 할아버지까지도 고향처럼 정답게 느껴졌다는 그 이와테현의 산골을 찾아가 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리고 할아버지가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이름을 지었고 이쁘고 획수에 각운도 좋다는 그 이름-_-은
당췌 기억이 안나고 오로지 당시 국딩-_-이던 내가 알던 한자;;로 해석이 가능했던 正子만 기억난다-_-;;
그래서 이 기억이 더 흐릿해지기 전에
이곳에 할아버지의 작은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할어버지,
저 선임분,
그리고 할아버지가 지어준 그 제비꽃 이름의 분도 모두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