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릴적부터 우리 아버지는 술집 사장님 이셨다.
예전엔 끗발좀 날렸다는 명동카바레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텐드빠 호텔나이트 유토피아 같은 술집들.
아버지 직업때문이었는지 어릴적부터 또래애들과는 좀 다르게 살았던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 보다는 화장품냄새 진한 아줌마들 사이에서 놀았었고,
슛돌이,통키 보는것보다 어우동쇼; 보는 일이 더 많았던 내 어린시절.
새어머니가 들어오시기 전까진 항상 아빠 손을잡고 아빠의 직장?에 같이 나가서
아저씨들 포커치는거 구경하고; 뭐 그런 일상들.
매일 밤업소로 본의 아닌 출근;을 하다보니 연예인들도 많이 알았었다.
연예인이라고 해바야 지금은 다들 할배 할매됐지만
그땐 최고의 코미디언들과 가수였었다.
번쩍거리는 의상에 구수한; 노래솜씨와 입담들.
휘황찬란한 모습들에 멋모르는 어릴적에도 난 가수되야지 했었는데,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불렀었다. 그지깽깽이 딴따라들; 이라고.
소위 잘 나간다는 가수들도 돈조금 더 받을려고,
무대 몇번 더 설려고, 연분도 없는 어깨아저씨들 회갑잔치에
무슨무슨회식에 불려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끽해바야 평범한 사람들 눈엔 밤업소 종사자들에 불과한 사람들에게
무릎꿇고 온갖 아양을 떨고.
나에게도 잘보이려 이런저런 선물에 비굴한 웃음까지.
마냥 어리기만했던 내 눈에도 가수란 직업은 개그맨이란 직업은
너무 힘들고 불쌍해보이기만 했었다.
몇년전 우연히 연극을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다.
친구랑 연극보러 갔다가 친구가 한눈에 반해서
몇번을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다가 결국 다같이 친구를 먹게된 그사람
무대위에 있을땐 그리 이뻐보이고 잘나보이기만 했었는데
현실은 참 서글프더라.
3달을 공연해서 받는 수입이 200만원.
그전 연습과정과 준비과정까지 하면 5달을 해야 200만원을 받더라.
그것도 그쪽바닥에선 꽤 높은 액수라지.
어쩔수 없는 생활고에 알바를 하고, 궁핍하게 살아간다.
옷도 사야하고 화장품도 사야하고 무슨무슨공부도 해놔야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돈도 못버는게 이것저것 잔뜩 사기만 하는
철없는 애로 보이겠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그나마 연극도 못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을 꾸밀 노력도 하지않기에 도태가 되어버린다나.
며칠전 티비를 보는데 그친구가 존경한다는 연극배우가 드라마에 나왔다.
대사한줄 단역으로.
그 사람의 연극도 보았었는데,
무대에서 그토록 빛나던 사람이
연기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소름돋을만큼 명 연기를 펼치던 사람이
대사한줄의 초라함속에 사라지더라.
그래도 그런 단역하나 맡기도 하늘에 별따기란다.
짧으나마 티비에도 나올수 있고 몇시간 대기에 몇초 연기에 한달 알바비를
벌수있어서 하고싶은사람이 줄을 서있다고 한다.
그렇게서라도 연극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러는거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었다.
"난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잠시라도 살아본다는게 너무 행복해.
내 연기를 보고 숨을 멈추었다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관객들을 보면
너무 좋아서 심장이 터질것만같아.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내 능력이 다할때까진 무대에 꼭 설꺼야" 라는 친구의 대답.
얼마 되지도 않는 돈에 몇달을 고생하면서도
신문배달에 바텐더에 빵집알바를 해가면서도,
아프신 어머니가 자기 걱정뿐이라고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친구는 배우가된게 너무나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했다.
몇해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유명한 코미디언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모나이트클럽 사장시절 데뷔를 시켜주었던 인연으로
유명해진 다음에도 절친하게 지내셨었고,
나 역시 아저씨라고 부르며 잘따랐던 그분이
연애인 해보고 싶다고 철없이 설치던 어린시절 나에게 말했었다.
"남을 웃기고 울리고 감동받게 한다는건
쉬운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직업으로 살아가는건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무대위에서 지어보이는 웃음 눈물의 몇백배는 무대뒤에서 지을줄 알아야
성공할수 있다고."
자기가 하고싶은걸 하면서 살아간다는건,
화려해보일수록 속은 더 어둡고 우울하기만 한것 같다.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 언제까지 꿈에 취해서만 살꺼냐고
좀 현실을 냉정하게좀 바라보라고 매번 잔소리 해대는
내가 삐뚤어지고 꿈을 잃어버린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