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솔로가 되어 마음 고생으로 일주일에 3킬로가 넘게 빠져가던 나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을 까는 것처럼 외로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나의 미모는 아직 녹슬지 않았는지 몇 건의 소개팅이 들어왔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갈 뿐이었지만, 그래도 소개팅은 빚을 내서라도 나갔다.
그 중에 한명의 주선자가 어제 오후 3시쯤 메신저에서 말을 걸었다.
소개팅 상대방이 오늘이나 내일 아니면 내년 초에 보자고 했댄다.
솔직히 당일 소개팅이라니 기가 막히긴 했지만
내일은 내가 중요한 약속이 있고 해서 그냥 당일 저녁에 만나자고 했다.
서로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상대방에게서 연락은 저녁 5시쯤에 왔다.
조심스럽고 공부만 하느라 연애 한번 못하는 남자라고하니 그러려니 했다.
7시가 약속인데 5시 쯤 되어서 하는 소리가 부페는 어떻겠냐고 한다.
솔직히 소개팅에 부페라니, 빌게이츠가 러쉬앤캐시에서 대출 받는 것보단 덜하지만 좀 내 상식에선 이해가 안가는 소리다.
게다가 알고보니 거기 만원도 안하는 저가 부페다.
난 애슐리도 만원 이하지만 좋아한다.
하지만 롤 스시 부페가 만원이라니 신입생 때 우르르 가서 열 접시 먹고 오는 그런 곳일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무난하게 스파게티나 먹자고 했다.
거기서 자긴 안먹어봐서 모른다며 골라달란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좀처럼 고르질 못하고 초조해한다.
그래서 '해물/육류 중에 고르고 크림/토마토 중에 고르면 편하다'라고 했더니
결국 새우 든 스파게티를 시켰다.
새우에 머리나 꼬리가 붙어있을 때,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
1. 손으로 뗀다.
2. 포크로 자른다.
3. 다 먹는다.
소개팅에선 2번 아니면 3번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그 분은 4번 '입에 넣어서 씹고 머리와 꼬리만 접시에 뱉는다.'를 선택하셨다.
나는 한때 새우였을 어떤 잔해들을 여섯 덩어리나 보아야 했다.
게다가 앉은지 5분 만에 자기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단 이야기를 했다.
테이블 아래서 나는 조용히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뛰쳐 나가고 싶다고...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한번도 연애 안해보셨다고 들었는데..."랬더니
"이젠 해보려구요. 왜요? 안돼요?"라고 한다.
그러더니 "전 우유부단한건 아닌데... 왠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더라구요."란다.
난 웃으면서 말해줬다.
"사회에선 그런 걸 우유부단하다고 해요."
식사를 남자가 계산했으니 내가 후식을 사야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텼다.
그 남자는 코코아를 시켰다. 턱에 구멍이 있는지 마시는 내내 자꾸 흘린다.
컵에서 음료가 흘러내릴 때,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
1. 손으로 닦는다.
2. 티슈로 닦는다.
소개팅에선 2번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그 분은 3번 '혀로 닦는다.'를 선택하셨다.
바닥 부분부터 곡선을 따라 혀를 올리는,
그 남자가 컵을 애무하는 모습을 서른 번은 봤다.
주선자와도 인연을 끊고 싶다.
2009.12.04 11:16:14
1.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