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여러번 적은적 있는것 같은데
 
우리 아버지는 고물상을 하신다.
 
나름 대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하셨고,
 
대졸은 아니지만 나름 과장이라는 직책까지 계시다가
 
그룹 총수라는 김X중 아저씨 때문에 그만두게 되셨다.
 
나 어릴때 세계는 넓고 어쩌구 책 읽어봤는데...
 
그러다가 자꾸 이 사람들이 그쪽 실무 책임자였던 아버지에게 일을 물어오는거라.
 
쫓아낼땐 언제고... 하는 생각에 그 회사와 거래를 하셨던 아버지.
 
그런데 그 회사가 망했다. 김우X 아저씨의 화려한 해외도피만을 남기고.
 
그래서 아버지가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으신건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시 외곽에 고물상을 냈다.
 
 
거기서 일하시던 분이 집안에 일이 생겨 급하게 고향에 내려가셨다고 한다.
 
금요일과 일요일(토요일은 결혼식 때문에;;;) 하루종일 아버지 가게에 가서 일을 도왔다.
 
 
다들 알다시피 금요일은 무진장 추웠다.
 
가자마자 한 일이 나무난로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어느정도 몸을 녹이고 한 일은
 
고물들 분류하기.
 
알루미늄은 키로당 천 얼마. 철은 키로당 백 얼마. 같은 캔이라도 나눠야 한다.
 
대충 분류해놓으면
 
아버지가 굴삭기로 꾹꾹 눌러놓는다.
 
 
그리고 또 하는 일은
 
종이 분류하기.
 
신문지는 키로당 120원, 파지는 키로당 110원.(구입 가격이...)
 
이것도 역시 분류해놓으면
 
아버지가 굴삭기로 다져놓으신다.
 
 
그렇게 한참 일하다 보면
 
어느새 남들이 말하는 아침에 해당하는 시간이 온다.
 
그러면 슬슬 동네 리어카꾼들이 온다.
 
아버지와 몇몇 아저씨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더라.
 
많이 보이지 않나. 길에서 '구루마'에 종이박스나 신문지 같은걸 쌓아가며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고물상 대문을 지나 들어오면
 
1톤 트럭 한대가 넉넉히 놓여질만한 크기의 저울이 있다.
 
땅에 파뭍혀 있다. 사려니 너무 비싸서 아버지가 만드셨댄다 -_-b(역시 왕년의 계측기 전문가...) 리모콘으로 0점 조정도 가능하댄다.;;;
 
그런 종이들은 모두 키로당 110에 사들인다.
 
그것들을 다시 분류하는것이 내 일.
 
 
등굽은 할머니 한분이
 
때가 꼬질꼬질한 다 떨어진 유모차에
 
끙끙거리며 실어온 종이들은
 
끽해야 40키로그램을 넘지 못한다.
 
4400원이다.
 
그 4400원을 위해 그 할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까지 온 동네를 뒤지고 다닌다.
 
그런 리어카꾼이 하루에도 몇십명씩 찾아오니
 
이런 작은 시흥시 외곽도 이러는데
 
서울같은 대도시는 오죽하겠는가.
 
몇백원 더 받아보겠다고 저울에 슬그머니 소심한 발자국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티나면 안되니까, 살짝 올려 놓으면 고작해야 5키로 더 나간다.
 
가끔 아버지는 올려서 천원단위로 계산을 해주곤 하시는데
 
그럴때마다 그분들이 나가고 나면 그분들의 형편을 나에게 설명 해주신다.
 
 
꼬박꼬박 아침마다 찾아오는, 아버지보다 한살 어린 약간 정신 불편하신 아저씨.
 
한번은 아버지가 리어카를 빌려주셨는데, 어리숙하게도 그걸 그냥 자기꺼로 여기시곤 다른곳에 되파셨다 한다.
 
처음엔 의심했지만, 이분이 말도 더듬고 하시는걸 보고는 그걸 되찾아와서 그냥 장기 대여 형식으로 아저씨 전용으로 만들어 주셨다 한다.
 
그냥 고물상 앞에 자물쇠로 채워놓고 열쇠 하나 복사해주곤 쓰고 싶을때 써라 이거란다.
 
한번은 동전통의 동전을 한움큼 쥐어 주머니에 넣길래 "너 뭐하는거야!!" 라고 살짝 혼을 내셨단다.
 
지금은 그거 쥐어봤자 얼마나 쥐었겠니;;; 하시며 조금은 후회하시는 눈치.
 
 
어머니와 함께 오는 약간 모자란 아들. 40은 훌쩍 돼 보이는 이 아저씨는 계속 투덜거린다.
 
멋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기분 나쁠수도 있지만
 
하는 행동이 영락없이 5살 꼬마같다.
 
어릴때 이 동네에 시집와 평생을 이 동넹 살며 그 아들 뒷바라지만 하다 지금 아들과 같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그 어머니.
 
 
보고있으면 살짝 우울해진다.
 
가끔 천원 이천원 정도밖에 못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거기서 집까지 오는데 차비가 그정도인데
 
그걸 벌기 위해 한나절을 동네를 돌아다닌다.
 
 
하룻밤 섹스에 18만원을 내고, 양주 한병에 20만원을 쓰고, 나이트 n빵에 수십만원을 쓰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몇백원의 세계가 거기에 있다.
 
 
 
한겨울에 야외에서 하루종일 일한다는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솔직히 어릴때부터 몸보다는 머리를 써 왔고, 스스로도 두뇌와 육체로 나눌때 두뇌형 인간이라 생각해 왔는데
 
점심 먹을때는 김치 하나만 가지고도 한그릇이 비워지더라.
 
괜히 육체노동자들이 밥을 많이 먹는게 아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분이 찾아오신다.
 
뭐하시는 분이신진 모르지만, 가게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능숙하게 커피를 뽑아드시고는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재밌는 아저씨다.
 
갑자기 나에게 군대는 다녀왔냐고 물어보신다.
 
다년간의 경험상, 6년제 의대 비스무리한걸 다니고 있어서, 그거 졸업하고 갑니다. 라고 말하면 귀찮아질게 뻔하기 때문에
 
그냥 갈거라고 말만 하고 아버지가 시키신 일을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아버지가 말씀하셨나 보다.
 
그 아저씨는, 공중보건의라도 25 넘어서 훈련복 입으면 그게 개고생이다.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라며
 
내 몸에 앞뒤로 문신을 해주시겠단다;;;
 

"나 젊을때, 문신 처음 배울땐 나무젓가락에 바늘 있잖아요 바늘. 그거, 이불 꼬매는 바늘. 그거 쫌쪼~~마게 묶어가지고 그걸로 파는거야. 연탄재 뽀~~얗게 갈아가지고 그걸로 심어야 그게 찌~~인 하고 멋있는 진짜 남자 문신이지. 요즘 기계로 색깔넣고 하는건 멋이 없어. 내가 예전에 내 친구들, 형님들, 동생들 방위 마~~니 보냈지"
 
아버진 재밌다고 응수하신다.
 
"어어? 사장님도 하나 해드려?? 가만있자... 사장님은 팔이 얇아서 고건 못하겠고... 아 저기 검단에 백구두라는 형님이 있거든. 이젠 60 넘은 할아버진데, 검단 빽꾸두라고.. 그 형님이 팔에 뭘 새겼는지 알아요? 와인잔 있잖아 와인잔. 거기다 여자가 나체로 들어가 있는거야. 그리고 돈다발이랑 카드랑 담배 타는게 옆에 있고, 밑에 한자로 남 자 이렇게 새겼더라고. 이게 이게 남자의 길이다 이거야. 술먹고, 여자먹고, 담배먹고, 돈먹고, 노름하고... 사장님은 팔이 얇으니까 딴건 됐고, 와인잔에 젊고 빵빠한 처자 하나만 새겨줄게. 이거 꼬빡 밤새면 2틀 정도에 그림 그리고, 붓기 빠지고 다시 그리고 그러면 열흘 정도면 돼"
 
이거 도무지, 이젠 문신해도 군대 가요 라는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한참을 그렇게 휘저어 놓다가 갑자기 훌쩍 가버리신다.
 
 
그리곤 또 다른 아저씨가 찾아오셨다.
 
길에서 자주 보이는 장작구이 하는 아저씨랜다.
 
연기 많이나고, 그을음 생겨서 장작구이에 못쓰는 나무들 아버지 나무난로에 갖다주러 오셨단다.
 
참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아는 사람도 많고, 또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이 아저씨도 말이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아저씨는 말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장작만 패다가 가신다.
 
덕분에 장작도 패보고, 아버지 따라 굴삭기 운전도 해보고...
 
 
마지막에 찾아온 아저씨는(일요일날은 이 아저씨 때문에 늦게까지 있었다 ㅜㅜ)
 
용달트럭으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떠돌이 고물상 아저씨다.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데서 버리는 물건들을 아버지 가게로 가져다 준다.
 
큰 사업을 했다가
 
imf때 쫄딱 망하고, 그 돈으로 작은 고물상을 시작했는데
 
노사모 넘버 300 안에 든댄다. 골수 노사모 회원이랜다.
 
무슨 행사때 노무현 옆자리도 앉아봤댄다.
 
그래서 노무현 덕좀 봐서 고물상 일으켜 세웠다가
 
또 쫄딱 망해서 지금은 동생이랑 같이 용달차 하나로 떠돌이 고물상 일을 하신단다.
 
우리 아버지 가게 같은 고물상을 다시 세우는게 그 아저씨들의 꿈이라는 이야기까지가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고
 
거기서 발견한 하드들 집에 가져와 연결해보니 야동은 커녕 야사 하나 안 들어있던 맹탕에 4기가짜리 두개;; 40기가 하나, 뭐 이런 허탕들 뿐이라 또 우울해지는
 
그런 노동이었다.
 
 
여기도 고학력자들 꽤 되는걸로 알고 있고, 집이 잘사는 사람도 많은걸로 알고 있다.
 
나도 집은 어려웠지만, 부족하다고 느끼지는 않고 자랐고(워낙 입는거에 집착을 안하다 보니;;; 먹는것만 잘 먹고 자랐다 -_-)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화이트 칼라가 될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고, 머리가 불편한 사람들도 많고, 어두운 쪽에 발 담궜던 사람도 있고, 100원 200원 더 달라고 화내는 사람도 있더라.
 
예전엔 하루에 2~3시간밖에 일을 해보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찾아오는줄 몰랐고
 
이번처럼 꼬박 12시간을 일해보긴 처음이라 밤에는 근육통으로 시달렸다.
 
얼마동안 군복무를 하고, 내 일을 가지면
 
이제 아버지 일을 도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일하시는 분도 다시 오실것이고.
 
또 한 몇년안에 아버지도 그만두고 쉬고 싶다고 하시니 더더욱 기회는 없어질 것이다.
 
난 이번 주말의 이 경험을 곧 잊을테고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가겠지.
 
 
괜히 섣불리 나서면 싸구려 동정이 될테고, 그냥 우울하기만 할 뿐이다.

-_- : 하...열심히 살겠습니다... (2008/01/29 01:11) 글삭제
-_- :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것 만으로도 행복하다는걸 알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새삼스레 다시 와닿네요. (2008/01/29 02:40) 글삭제
-_- : 볼글로... (2008/01/29 08:20) 글삭제
-_- : 무조건 볼글~ (2008/01/29 09:25) 글삭제
-_- : 현재 나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글이군요..... (2008/01/29 11:35) 글삭제
-_- : 아... 열심히 살께요... (2008/01/29 12:17) 글삭제
C : 아버님의 후덕하심이 너무너무 부럽네요. 글 읽고 나니 내 자신때문에 참 씁쓸해지네요. (2008/01/29 12:44) 글삭제
-_- : 볼글로...(2) (2008/01/29 13:48) 글삭제
-_- : 하룻밤 술값에 몇십만원.. 뜨끔하네요. 정말 값진 경험 하셨네요. 형아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볼글로...(3) (2008/01/29 14:06) 글삭제
-_- : 돈이란 게 참 요물인 것 같습니다..그리고 어서 볼글로.. (2008/01/29 14:45) 글삭제
-_- : 후술은 어서 자폭하십시요...그러므로 볼글로...(5) (2008/01/29 15:31) 글삭제
-_- : 후술은 어서 자폭하십시요...그러므로 볼글로...(6) (2008/01/29 15:57) 글삭제
후술; : 왜 이런글에서까지 제가;;; (2008/01/29 16:25) 글삭제
-_- : 후술은 반성조차 하지 않는건가...그러므로 볼글로...(6) (2008/01/29 16:47) 글삭제
-_- : 후술...불쌍하다 -_-; (2008/01/29 16:57) 글삭제
-_- : 글 잘 읽었습니다..  (2008/01/29 19:49) 글삭제
-_- : 잘읽었습니다. (2008/01/29 20:20) 글삭제
-_- : 닥볼;
(2008/01/30 08:59) 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