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살기 어때요?"

 

"빈에 살기 좀 괜찮아요?"

 

빈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 있으면 남녀노소불문,

제일 처음 묻고 제일 처음 듣는 질문이다.

저 질문의 앞에는 (한국에 비해서)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내가 저 질문을 받으면 늘 이렇게,

"너무 좋아요. 딱 하나, 겨울 날씨 빼구요 ^^;"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분들에게서 오는 답변은 참 다양하다.

회사에서 일때문에 오신 주재원 분들, 주로 아버님들은

 

"허허, 그냥 일하러 온거죠 뭐"

 

라는 대답이 많았다.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오신 분들이 많으니

좋고 싫고를 떠나서, 어깨에 걸려진 책임감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에 반해, 남편따라, 엄마아빠 따라 온 어머님들과 아이들은 의견이 참 많이 갈린다.

 

"여기 너무~ 좋아요. 좀 오래 있으려구요"

 

에서부터

 

"그냥 사람 사는 동네죠 뭐, 별거 있나요?"

 

도 있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정말 증오해요! 맨날 여기 망하라고 기도해요!" 

 

이런 분도 있다;;

 

그리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젊은 여성 (정확히는 여학생),

특히 한국에서 있다가 여기에서 10대 중후반 ~ 20대를 보내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곳을 지겨워한다.

 

빈을 싫어하는 분들(저주한다는 분 포함 --;)에게 왜요? 라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답이 온다.

 

"지루하잖아요. 한국사람도 없고, 인터넷도 느리고, TV도 재미없고."

 

재밌는 건 같은 나이의 남자애들, 남학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한 번도 못봤고

오히려 수학여행 어디로 간다고 즐거워하고, 친구들이랑 농구한다고 좋아하고.

좋아 죽을 정도까진 아니지만 좋다 or 싫다로 나누면 좋다는 쪽이라는 거.

 

사실 이 동네,

진짜 안변한다.

 

여기에서 오래 사신 분들 말을 들어보면 10년이 지나도, 3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 같다고 하고

최근에 그나마 좀 변화를 느낀 게 EU가 되면서 화폐단위가 쉴링에서 유로로 바뀌고

그에 따라 물가가 좀 오른 것 정도.

 

한국에선 인터넷으로 수백메가의 파일이 몇분안에 안받아지면 짜증을 내지만

빈에서는 하루에 하나라도 받아진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야 하고

 

한국에선 몇달동안 어딜 안가다가 어느날 문득 가면 여기가 어디야. 소리가 절로 나올 때도 있지만

빈에서는 별로 그런 건 못느끼고 산다고들 한다.

심지어 빈의 중심인 1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 건물도 함부로 못허물게 됐다는. -_-;

 

이 동네 TV, 한국으로 치면 KBS에 해당하는 ORF는 오스트리아 애들도 재미없다고 안보고 독일방송을 보고,

한국에는 몇년 전부터 전철, 버스만 타면 다들 뚫어져라 보고 있는 DMB라는 거, 여기에선 볼 수가 없다.

이 동네 친구가 인터넷 기사를 보고 나한테 와서

'한국에선 핸드폰으로 TV본다며? 다들 그러고 살아?' 하고 신기하게 물어보니까.

 

상황이 이러하니

단순하고 몸쓰는 걸 좋아하는 남자애들이야 별 불만이 없겠지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친구들, 유행하는 드라마, 인기가수들을 놓치면 안되는 여자아이들에게는

이 동네가 정말 지루할만도 하지.

 

2005년부터 이 동네에 살다가 정확히 1년, 365일만에 한국에 들어갔더니

인천공항 입국심사대에 설치된 대형 PDP인지 LCD인지, TV에선 문근영이 블루투스 헤드셋 꽂고 춤을 추고,

신길역엔 영화에서나 보던 슬라이딩 도어가 생겨있었다.

내가 출국을 조금만 더 늦게 했으면 서울시내 버스를 못타서 어버버 할뻔도 했고.

 

다이나믹 코리아. 라는 말.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잘 만들었다고

일년만에 입국하는 공항에서 어리버리하게 서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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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쉭쉭 변하는 세상과

일년이든 십년이든 그 모양 그대로인 세상.

인류를 위해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한국에 있다가 여기에 살게 되면서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고

남들 다 보는 TV프로그램을 보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통하는 일도 없어서,

그리고 핸드폰, PMP, 카메라같은 전자기기들. 조금 덜 최신 걸 써도, 아무도 뭐라고 안그래서 내 멋에 살기 좋다.

 

계약서에 써있는 연봉의 상당부분을 사회보험비로 떼이지만,

치과든 정형외과든 입원이든 통원치료든, 심지어 출산도 병원에 가면 공짜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자가용이 필요하지 않으니 기름값 오른다고 마음이 아플 일도 없다.

 

월급이 많다고는 볼 수 없지만 돈 나갈 일 또한 많지 않으니

한국처럼 아둥바둥 적금이니 펀드니 청약이니 가입해서 기어이 목돈을 만들어야 할 일도 없고.

좀 찌뿌드하다 싶으면 기차타고 가까운 이웃나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덤이다.

 

물론 내가 갑자기 유명해지고 지위가 상승해서 떼돈을 벌게 되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고,

그만큼 오스트리아라는 국가, 사회주의라는 경제체제가 도둑놈으로 보일지도 모르지.

나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많이 버는데,

나보다 덜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나랑 똑같이 하고다니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

저 위에서 이야기한, 오스트리아를 망하라고 저주한다는 분처럼 -_-;

 

이 동네 교육과 직업선택 관련한 것들도 마음에 든다.

정확한 수치인지는 모르겠는데, 들리는 이야기를 적으면

초등학교 교사 한달 월급이 1.500 유로, 청소부 월급이 3,000 유로.

공부를 잘 못해도, 명예가 없어도, 뭘 하든 먹고 살만한 소득은 나온다는 이야기고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사람을 고치고 싶으면 의사를 하면 되고

정의를 수호하고 싶으면 법관을 하면 되고.

사물의 원리를 알고싶으면 학자가 되면 되고.

 

내가 아직 이동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처럼, 신분상승을 위해, 돈을 많이 벌자고,

의대, 법대, 이런데 들어간다는 경우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못들어봤다.

오히려 '편하고 돈 잘버는 일 많은데 왜 골치아프게 그런 일을 해?' 라는 말은 들어봤다만.

 

사회에서, 직업을 고를 때

어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면, 의욕이 더 큰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고

일을 하기 위한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면, 점수가 좋은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의욕이 큰 사람은 그 일을 할 자격을 얻은 다음에, 신나서, 재밌어서 일을 하겠지만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은 그 일을 할 자격을 얻은 다음에.. 얼마나 즐겁게, 진심으로 일을 할까.

적어도 돈을 따라서, 명예를 따라서 의사가 된 사람보다는,

돈은 좀 잘 못벌어도 병마와 싸우고 싶어서 의사의 길을 택한 사람이 환자에게 더 큰 감동을 줄 것 같은데.

 

나도 工이라는 분야에서 시험을 잘 보는 사람에 속하고,

의욕도 있긴 하지만 시험을 잘 보는 능력보다는 좀 부족한 것 같다.

여기 애들을 볼 때는 이걸 더 절절히 느끼고.

그리고 중요한 일일 수록, 커다란 일일 수록, 의욕은 시험성적을 압도해간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가 그랬더라. 잘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마지못해 미분방정식을 만들어, 풀고, 논문을 쓰려고 머리를 쥐어 싸매는 나는

우와 이거 신기하다고 달려들고, 이틀 뒤에 '드디어 풀었어~!'하며 해맑게 웃는 이동네 애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

이 동네 애들을 보면서 조금씩, 이 사소한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는 건 희망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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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총선 결과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했다는 표현대로,

'종살이하는 놈들'이 노비문서를 찢자고 덤벼들지는 못할망정

노비가 될테니 밥알 붙은 주걱으로 싸대기 한대만 때려달라고 하는 꼴을 보니,

그저 어이가 없었다.

 

땅값은 벌써부터 들썩여서 집이 없는 사람들은 더 집을 갖기 힘들어질 것 같고

- 나중에 생길지 안생길지도 모르는 집값이 올라가길 바라며 투표한 사람들은 참.. 무슨 약을 먹여서 치료해줘야 될까.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기 전에 적금부터 두세개 깨야 할 것 같고

- 미국에 사는 한인 교포들, 의료보험이 비싸서 가입도 못하고 아파도 집에서 앓는다는 기사를 본게 엊그제다..

 

그놈의 영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발음에 서민들은 무의미한 돈만 더 퍼부을 것 같다.

- 그래도 우리새끼 영어 잘하니깐 앞으로 큰 인물 될거라고들 생각하겠지. 어학연수? 흥. 그런거 없이 외국생활 잘합니다.

 

예전에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좀 사신다는 분들, 어깨에 힘 좀 주신다는 분들.

외국으로 이민간다고 뭐라고 그랬는데

솔직히, 앞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한국에 들어가기 싫어지고 있다.

 

5년이 안 될 미래에는 아마 내 가정도 꾸릴 것이고,

지금의 여자친구는 와이프가 되어 임신과 출산도 할 것이고,

아기를 낳으면 예방주사니 뭐니 병원에도 데리고 다닐 거고,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해야 할텐데

내가 갑부집 아들도 아니고, 한국에선 그 비용이 감당이 안될 것 같다.

 

국민들이 이런 결과를 만들게 해버린 전 여당 사람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고..

 

이해찬 이양반이 교육에 대해 한 말들 보면 정말 어이가 없고..

김진표 이양반도 교육부총리 자리에 있었나? 암튼 그때 한 말들 보고 열받아서 혼자 버럭했었지.

정동영.. 이 사람은 잘하는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어. 앵커할 땐 좋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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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라는 곳이 좋다.

 

돈이 없어도 배울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아플 수 있는 이 동네.

검은머리 갈색피부 외국인이라 알게모르게 설움 좀 받겠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_- : 피부가 갈색;이신가요;; (2008/04/11 08:55) 글삭제
글쓴 : 이 동네 애들에 비해선;; 갈색쪽이죠; (2008/04/11 08:57) 글삭제
-_- : Scheisse Korea! (2008/04/11 08:59) 글삭제
-_- : 거기 여자들은 동양인한테는 잘 안 주나요? (2008/04/11 09:06) 글삭제
글쓴 : 0906// 시도를 안해봐서 잘 모르겠는데요 -_-;; (2008/04/11 09:10) 글삭제
C : 복지가 상당히 잘 되어 있나 보네요. 자리 잘 잡고 잘 사시길....  (2008/04/11 09:23) 글삭제
C : 생각할수록 많이 부럽네요. 

네살짜리 한달 놀이방 비용 36 + a(교재비), 
기름값 리터당 1700원,
비싼 집값 (전세 계약 다시 해야 되는데 도봉구도 집값 올랐다고 더 올리겠지;)

진급없으면 연봉은 매년 4-5% 대 인상;

우찌 사노;
(2008/04/11 09:28) 글삭제
-_- : 저도 호주에서 오래 산 것은 아니고 일; 관련해서 몇 달 있었는데, 
그 평화로운; 분위기가 처음에는 미친 듯이 지루하더니 나중에는 좋더라고요.
다른 것보다 우선 공기 좋은게, 한국 돌아오자마자 폐;저리게 느껴졌습니다.
(2008/04/11 09:47) 글삭제
-_- : 이 말 한마디가 생각나네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2008/04/11 09:49) 글삭제
험자형 : 아, 진짜 부럽습니다... 2mb 형이란 작자를 못 막아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에휴... (2008/04/11 10:00) 글삭제
-_- : 왠지.. 짠해지네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고민에 어느 정도 답이 되는 듯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008/04/11 10:10) 글삭제
ㄹㅇ : 아...진짜 이민 가고 싶습니다......ㅠㅠ (2008/04/11 10:43) 글삭제
-_- : 고딩때 친구가 이번주말 호주에 이민간다하더이다. 39살이란 적지않은 나이에 부린 용기가 일단 부럽기도하고, 사람들은 밖으로 내모는 이 사회가 야박하기도 하고..  (2008/04/11 10:44) 글삭제
-_- : 91년에 배낭여행으로 가본 빈은 참 예쁜 곳이었는데요.. 거긴 아직까지 그모습 그대로겠네요. 지난 투표일에 오랜만에 가본 학교에.. 봄에 벗꽃으로 제일 이쁘던 법대앞이 없어진것보고 경악;했었는데...거긴 그대로겠네요.. (2008/04/11 10:45) 글삭제
-_- : 혼자 밤에 맥주 마실때 비엔나 소시지가 짱인데; (2008/04/11 10:56) 글삭제
-_- : 다 좋은데 09:06 같은 걱정이 되서 솔로로는 못갈듯 싶습니다; (2008/04/11 11:09) 글삭제
-_- : 비엔나 또 가고 싶다. 비포썬라이즈 참 재밋게 봤는데.  (2008/04/11 11:13) 글삭제
-_- : 글 좋아요-_-b (2008/04/11 11:56) 글삭제
-_- : 겨울 날씨가 어떻길래요? 꼬치 어나요? (2008/04/11 12:40) 글삭제
-_- : 10:45 연대 졸업하셨나봐요?  (2008/04/11 13:24) 글삭제
카츠 : 봄이라 그런가...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2008/04/11 13:27) 글삭제
-_- : 치과도 모두 보험처리되나요?  (2008/04/11 13:29) 글삭제
-_- : 인스브루크에서 한국 아이스하키팀 경기한다던데.. 빈이랑 꽤 먼가? (2008/04/11 13:32) 글삭제
-_- : 꼬치 얼면 잘라야 하나요? (2008/04/11 14:13) 글삭제
-_- : 아..비엔나 공대 정말 가고 싶었는데 거기 석사 졸업하면 일할만한데가 많을까요 전공은 컴공;; (2008/04/11 15:18) 글삭제
-_- : Wien 정말 가보고 싶네요... (2008/04/11 17:57) 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