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하는 결혼식이라면 2차 술자리로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호프가 서너배 돌 무렵, 두살박이 큰 아들이 있고, 둘째를 임신 중에 있는 선배에게 결혼한지 두 달된 동기가 물었다.
"형, 근데 임신하면 그거 못해서 죽을 것 같지 않나요?"
아 죽을 거 같아 디져 디져 하고 손사래를 칠 줄 알았던 선배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딸을 치면 되지."
서른 다섯 먹은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것이 daughter를 때리는 것이 아님은 내 하드의 야동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지만,
또한 야동의 갯수만큼이나 서글프게 들렸고, 그래서인지 그 묘한 미소가 더 마음에 걸렸다.
"아니, 딸 치는게 뭐가 그렇게 좋아요;?"
라는 나의 현문에 선배는
"좋은 딸을 치면 좋아."
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웃었고, 좀처럼 뭔가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울컥하는 마음에 3차는 단란, 북으로 창을 내겠소 왜 사냐건 웃지요를 외치던 후배들은 결국 선배의 비밀을 듣고 말았다.
"호모 파베르."
도구의 인간, 그게 어쨌다는 건가에 대한 이런 저런 답을 후배들이 스스로 내리기 전에, 말문이 터진 선배는 비밀을 계속해서 털어 놓았다.
"다른 도구가 아니고, 젤, 윤활액을 쓰는 거지. 20세기 인류가 물려준 최고의 작품이라 해도 좋아."
"아, 아붐같은거요?"
대딸깨나 다녀봤음직한 후배가 말을 끊었다.
"아붐? 아붐. 그건 자지에 대한 모욕이야!"
친숙하기 그지없는 밀키로션 아붐을 경멸스런 표정으로 질타한 선배가 외쳤다.
"페페! 페페를 써!"
그 뒤 술값을 누가 냈는지, 집에까지는 어떻게 왔는지 따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단순한 두음절의 단어는 그렇게 뇌리에 각인됐다.
내 일도 아닌, 내가 어떻게 해 줄수도 없는 일 때문에 본의아닌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예전의 기세와 참신함이 많이 사라진 인터넷 신문 딴지일보 한켠에서 '딴지몰'을 발견해 무심코 클릭한 나는
각인된 흔적이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페페.
배송은 빨리빨리 대한민국답게 다음날 바로 도착했지만,
성인 용품을 구매하는 새가슴들을 위해 절대로 뭔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포장된 상자를 받아 들고서 나는
내가 뭘 샀더라 하고 거의 1분동안 기억을 되짚었던 것 같다.
선량한 사람이 본다면 그리스 양식 열주에서 하나 뚝 떼어난 기둥과 주각같은 모양,
세속에 찌든 자의 눈으로 본다면 영락없는 자지. 게다가 귀두는 주황색.
삼십대 초반의 공대 출신 아저씨는 봄의 주말이 바쁘다.
동기들을 제외한 다른 동문들은 오히려 대학 다닐 때보다도 높은 빈도로 만날 수 있다.
토요일 오후 다섯시 예식은 또한 술자리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
또다시 찾아간 호프집에서,
주저주저하던 신혼의 한 후배가 비밀을 전수해 준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형..페페... 죽이던데요. 연애 처음할 때 같아요!"
윤활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 그 집 페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기집 페페에 대한 미안함 따위는 조금도 있을 수 없는
삼십대 초반의 총각들도 지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하나둘 털어 놓았다.
후배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선배는
"오른손은 그저 거들뿐, 왼손에게 맡겨봐."
하지만 후배들은 - 나를 포함해 - 피식하고 웃으며 그런 것 따위는 이제 비밀도 아니오 하는 표정으로 바라봐 주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술취한 남자들은 응당 새로 탄생한 신혼 부부가 받아야 할 찬사를
남 앞에 내어 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자지를 닮은 병에 들어 있는 폴리아크릴산나트륨 용액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딸딸이 인생 근 이십년만에 맛보는 새로운 세상,
로션이나 보습오일, 심지어 아붐따위 한트럭을 준다해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의 미끌거림.
딸을 잡고 난 뒤 폭풍처럼 몰아치는 찝찝함과 나이 서른 처먹고 이러고 있다는 자괴감을 날려버리고도 남을 평온함.
아저씨들중 몇몇은 잡아도 잡아도 결코 충족할 수 없는 딸과 진짜 섹스와의 갭을 99.9% 메꾸고도 남는다고 열변을 토했고,
심지어 그들 중 다수의 솔로는 이제 여자를 소개받고 싶은 의지가 거의 다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고백한 남자들 중 적어도 둘은,
여태까지 다섯 이상의 여자친구와, 모르긴 몰라도 스무명 이상의 상호 보완적 관계 하의 여자들을 가져온 자들이었기에
좌중은 약간 술렁였던 것도 같다.
삼만이천팔백원이면 두달 넘게 일일일딸을 하고도 남는 저렴함.
야근에 치여 짬이 나지 않을 때도, 아플 때도, 친구들과 스타를 할 때도,
심지어 북으로 창을 내고 대딸을 외갓집 드나들듯 해도 앉은 자리에서 아무 말도 없이 뚜껑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순종.
삼십대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시작하면 활짝 열리게 되어 있는 그 무수히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노총각 최후의 보루.
연애와 결혼이 만들어 내는 그 숱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저씨들 중 그 누구도
에이 그래도 어떻게 그러냐라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들중 몇몇은 정말로 페페를 믿고 여자 만나길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
특히 선보러 간 자리에서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외모의 초등학교 교사가 저 연봉은 어떻게 되세요 하고 묻는 순간
에이 씨발 내가 페페 바르고 딸칠 시간도 없는데 주말에 이게 뭔 볍신짓이냐 하고 뛰쳐나왔다던 새끼는,
정말로 페페 두어박스 재어 놓고 주말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페페 오리지널 로션 페페 360N
제조원 중도화학산업주식회사.
MADE IN JAPAN.
의도했건, 혹은 그렇지 않았건,
21세기의 일본이 다시 한 번 한민족의 대를 끊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