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출장을 왔어.
출장 목적은 한가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서 오후 5시부터는 항상 시간이 비는거야.
장개들은 영어를 해도 못알아들어.
호텔 직원들조차 단순한 단어만 나열해도 몰라. 세븐일레븐이라고 하면 711호에 데려다주려고 해;
어렵게 찾아간 세븐일레븐에서는 거스름돈이 없다며 풍선껌으로 대신 주려고 해;;;
일주일 예정의 출장에 주구장창 호텔에만 박혀있는게 3일쯤 지나니 좀쑤시고 도저히 못견디겠는거야.
아무리 영어를 못알아듣는다고 해도 이건 공짜 해외여행인데 너무하잖아.
무작정 바를 찾아 호텔을 나섰어.
나무젓가락에 꽂은 옥수수를 뜯어먹는 배불뚝이 대머리 아저씨들 사이를 지나며
한 천삼백발짝; 정도 걸어갔더니 정말 거지같은 바가 하나 나오길래 무작정 들어갔어.
최대한 중국인인척;; 보이려 애쓰며 들어가서 바에 앉았어.
혼자 왔는데 테이블에 앉는건 혼자 호텔에서 맥주 마시는것 하고 다를게 없잖아.
블랙러시안을 먹고싶었고 "불래크 러시아느" 라고 일본에서 말하면 왠지 먹혔을것 같지만 중국이잖아.
그냥 2m 쯤 떨어진 여자가 마시고 있는 맥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바텐더는 전부 다 남자였고, 내가 손가락질 하는 것 만으로도 내가 외국인인걸 알아차렸나봐;
"$*%&($%&" 라고 하길래
"그래 그래;; 똑같은거;;;" 라고 대답했어;;;
근데 그놈이 자꾸 "*&%*%^&%*^*&" 이지랄 하는거야;;;
"아니;; 내가 이 거지같은 바에서 너랑 노닥거리면서 맥주 한잔 마시려고 중국어를 공부할 필요는 없잖아;; 이 시..시팔놈아..;;;" 라고 했거든.
물론 웃으면서^^
웃어야 해;;;
안그러면 난 삼합;회한테 붙들려가서 죽어있을걸.
단체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한테 공안;은 차가 막히니까 빨리 건너가라고;;;; 하는 나라거든;;
여튼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아까 손가락질로 가리킨 맥주를 마시던 여자가 존나 깔깔대며 웃는거야;;
내가 ( - _-)이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내쪽에 대고 소리를 치는거야.
"한국분이세요?!"
아아.. 감격스러워라..;;
눈물 흘릴뻔 했지 뭐야.
우린 음악 소리가 우리 목소리를 집어삼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붙어앉았어.
난 말했지.
"한국인을 전문으로 노리는 꽃뱀이라면 전 그리 물른 사람이 아니에요; 방금 얘기나누던 바텐더랑 한패죠?; 저는 의심이 많아서 걸려들지 않을거에요."
"그러면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술집에 갔겠지요^^"
"전 회사에서 환전해준 600위안 정도밖에 없어요-_-"
"아니래두요;;;"
그렇게 우연히 알게 된 우리는 마치 영화처럼 하나 둘 맥주병을 쌓아나갔어.
그 여자의 아버지는 제조업을 하는데, 생산단가가 터무니없이 싼 중국쪽하고 연계하지 않으면 사업 유지가 힘들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 회사에서 아버지(사장)의 비서;로 근무하며 중국어를 익혔고,
아버지랑 하루 종일 함께 다니며 통역 일을 해주다가, 저녁이 되면 아버지를 호텔에 고이 모셔두고는;;
혼자서 이렇게 바에 와서 술을 마신데;;
"한국인을 노리기 위한 꽃뱀의 시나리오 치고는 탄탄한데요?;;"
내가 여자를 찾아 밖에 나온건 아니지만 이렇게 기분좋게 취해서
이런 이쁘장한 여자와 우리 둘 빼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자꾸 점점 더 이뻐보이는거야.
사실 술에 취하기 전부터 좀 이쁘긴 했어.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서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이건 뭐...;
X자로 꼬면서 걷는 미끈한 다리 하며, 꼿꼿히 편 가는 허리, 당당해 보이는 어깨..
도무지 흠잡을 곳이 없는거야.
"저기 이거.. 해외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하루 즐겁게 놀고 내일부턴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거죠? 괜한 희망 갖고 싶지 않아요;"
"왜요? 연락처 알고싶어요?"
"네"
"쉬운 남자네요^^"
"지가 먼저 꼬리쳐 놓고선-_-"
"전화번호 안알려주면 어떡할건데요?"
"오늘을 최대한 재밌게 보내야죠."
"어떻게요?"
술해 취해 한쪽 팔꿈치를 바에 기대고는 내 쪽으로 날 똑바로 응시하며; 질문하는데,
느낌이 팍 오면서 확 용기가 솟는거야. '그래.. 하루밖에 안된다는데!'
"여기서 천삼백발작 정도만 가면 제가 회사 돈으로 묵;는 호텔이 있어요."
그녀는 또 한번 바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도록 깔깔깔 웃는거야.
"그래 그래; 이 여자랑 나랑은 한국인이고, 오늘 내가 호텔로 데려갈거야 이 머리 떡진놈들아^^"
라고 좌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데,
그녀가 바에 충분한 돈을 놓고는;;; 내 손목을 딱 잡더니 벌떡 일어나 걸어가는거야.
우아.. 이 여자 정말 멋지지 않아?;; 간지폭풍이야 ㅠㅠ
"천삼백발짝 넘으면 안들어갈거에요~"
난 앞장서서 존나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 잘 따라오나 가끔 뒤를 돌아봤어;;
그녀는 웃으면서 뒷짐지고 날 따라오더라구;;
그녀를 침대에 고이 앉혀두고 먼저 씻고 나오겠다며 샤워하러 들어온 나는
그녀가 가버릴까봐 존나 빨리 대충 물로 행구고;;; 나왔는데 벌써 침대에서 잠든건지 잠든척을 한건지,
꼼짝도 안하고 누워있는거야.
조명을 낮추고, 그녀 옆에 누워서 그녀의 숨에 섞여 풍겨오는 맥주 향을 맡으면서
잠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나즈막히 말을 걸었어;
"자고 있어요..? 이게 꿈은 아니겠지요? 이런 영화같은 일이.."
그녀는 살짝 뒤척이며 잠꼬대처럼 대답했어.
"다섯번째 줄 이후로 꿈이에요.."
...
내가 그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