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새로운 커피전문점이 눈에 띈다.
예전 그 자리는 동네 어귀에 하나쯤은 있는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주된 메뉴로 하는 평범한 식당이 있던 곳이 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임대가능' 이라는 A4용지가 가계 벽면에 색이 바랠 정도로 붙어 있더니 커피전문점이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커피전문점은 주인도 젊고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메뉴도 와플과 커피를 위주로 한 유럽식.
굳이 비싼 브랜드 커피를 선호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고객을 타켓으로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예상대로 목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장사가 꽤나 잘되었다.
편안하게 츄리닝 차림으로 친구와 두런두런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점은
멀리 나가기 귀찮은 자취생들에게는 분명히 강점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 커피전문점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원두원가대비 70%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사업이지만 임대료, 인건비, 관리비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건 얼마 안되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처럼 박리다매. 세트메뉴. 불편한 테이블. 표준화된 제품으로 가야하는데 그것도 공간을 서비스한다는 개념이 강해 쉽지 않다.
결국 순풍처럼 보였던 사업은 커피 한잔 시켜놓고 오랫동안 테이블을 차지하는 고객들에 의해 회전율이 떨어지면서 이익이 줄었고
동네 커피전문점이 잘 된다는 소리를 듣고 합류한 새로운 또다른 경쟁자들에 의해 그나마 남은 파이마저 나누어 가져야 했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서로가 공멸할 것이다.
행여나 운이 좋아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소자본으로 월 300~500백 이익 이상은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일년 365일 종일 투자한 대가로 얻는 수익이다.
이건 마치 IMF로 새출발을 강요당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평행이론처럼 보인다.
단지 종목만 노래방과 치킨집에서 커피전문점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예전에 아버지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한 적이 있었다.
만 45세 이상 직원이 구조조정 대상자였고 예외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퇴직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거액의 퇴직금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를 원하지 않았지만 몇몇은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사업을 했고 그 중에 대부분은 망했다.
따지고 보면 회사에서 돈을 버는 것만큼 안정적인 것도 없다.
안정적인 회사라면 아무런 경영상의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고 매월 확실하고 점진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
업무적인 인간적인 스트레스가 있다고 하지만 광고처럼 피자 돌리면서 구매,영업,세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주인장만 할까?
공무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히 안정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공무원연금까지 감안했을 때 전체적인 현금흐름이 어느 다른 직종보다도 낫기 때문이다.
또 이런 현상은 단순히 젊은이들이 모험심과 투쟁심을 잃어서가 원인이 아니다.
소위 '기본재산'을 가진 집안의 자제 분들을 제외하고는 요즘 세상에 출세는 커녕 생존조차 힘들다는 사실을
세상이 너무 빨리 깨우쳐 주었고 그 경험을 인생에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눈에 그렇게 비칠 뿐이다.
개인의 신념과 사회적 정의보다 먹고 살기 위해서 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직장처세술 책에 한 번은 봄직한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는 것이 칭찬받는 현실.
김성주가 그랬었지.
나가면 춥다고.
나름 지상파 방송 최고 아나운서를 하던 사람도 나가면 춥다고 하는 현실이다.
보통사람은 직장에서 잘리면 바로 빈민층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오래된 미래가 무섭다.
"나는 배경의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너무 일을 잘하거나 못해서 눈에 띄지 않고,
너무 빨리 승진하거나 뒤쳐져서 눈에 띄지 않고,
회사를 5년 다녔어도 사장이 이름을 모르고 ,
저 사람을 자르면 일이 잘 될지 못 될지 알 수 없는 "서류 상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고...
잘 벌어와도 요만큼, 못 벌어와도 이만큼...
그냥 그렇게 벌면서 굶을 걱정 안하고 살고 싶어요.